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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을 '잃어버린 9년' 희생양 삼을텐가

[데스크칼럼]이재용을 '잃어버린 9년' 희생양 삼을텐가

등록 2017.08.08 03:30

수정 2017.08.18 09:56

황의신

  기자

이재용을 '잃어버린 9년' 희생양 삼을텐가 기사의 사진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대한민국은 어떤 시대를 살았을까.

광화문 네거리에는 국민의 목소리가 넘지 못하도록 경찰버스 산성이 쌓였고, 촛불 든 국민이 청와대 앞까지 진격할까 겁이 나 대통령이 피신했다던 시대.

단지 생존을 위해 건물로 들어갔다 화재로 목숨을 잃은 철거민과 정권이 쏜 물대포에 직격당해 목숨을 거둔 농민이 폭도로 내몰렸던 시대. 그 죽음의 이유조차 위조되던 시대를 우리는 살지 않았는가.

국정원은 정권 연장과 통치의 도구로 전락해 전국민을 감시하고 정권에 밉보이면 개인이든 기업이든 온갖 수단을 통원해 억압하던 시대이지 않았나.

수백의 꽃다운 소년소녀가 이유도 모른 채 수몰돼 살려달라 발버둥쳐도 속수무책이었던, 그 아이들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라는 국민의 목소리가 철저히 외면 받던 시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진실을 이야기하면 대통령에게 나쁜사람으로 찍혀 쫓겨나는 시대를 경험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이 짧았던 9년 동안 국민의 생명은 보호받지 못했고, 민주적 절차는 실종됐으며, 헌법적 가치가 무자비하게 짓밟혔음을 우리는 분명히 목격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 기간 절대권력이 되고자 하는 통치자들의 폭력에 무기력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재용. 위의 글과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는 이 이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그는 능력에 비해 훨씬 높은 곳에 훨씬 빨리 올랐으며, 대한민국 99.9%의 국민보다 훨씬 많은 부를 단기간에 축적했음은 분명하다. 그것 빼고 이재용의 지난 9년은 어땠을까.

갑작스런 대통령의 호출, 그리고 세 번의 독대. 우리가 지난 탄핵재판과 형사재판을 통해 확인한 것처럼 기업인도, 그중에서도 재벌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는, 달라면 줘야 하는 그런 존재에 볼과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 시대와 군사정권 시절을 살며 보고 들었던 경험을 통해 기업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 지를 아주 잘 아는 대통령과 정권에 밉보인 재벌의 말로를 아버지 시대로부터 경험했던 미숙한 2, 3세대 기업 후계자들은 애초부터 ‘절대갑’과 ‘절대을’의 관계였을지도 모른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말 처럼 “내라고 하니까 그저 내는 것이 편안하게 산다는 생각으로”(1988년 5공비리 청문회) 관행처럼 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이후에 속으로 뭘 바랐을 수는있겠지만 돌아오는 게 없더라도 “후회는 해서 무엇하냐”고 넘겼을 수도 있겠다.

집요하게 약점을 물고 늘어져 조르는 절대권력 앞에 세번이나 불려나간 이재용의 선택은 하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시키면 시키는 대로!’

강력한 카리스마로 회사를 이끌던 아버지마저 부재한 그 시기에, 꼭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나쁜사람으로 찍혀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일방적 주장과 추측. 재판 과정을 매일 취재해 온 취재기자들로부터, 그리고 수많은 보도를 통해서 들여다 본 이재용 재판에서 특검은 이 이상의 어떤 것도 내놓지 못했다.

특검은 이재용이 청탁했다는, 그래서 뇌물을 줬다는 명확한 증거를 내놓지 않고 증언에만 의존하고 있다. 그 마저도 재판과정에서 번복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음을 알고 있다.

특검, 더 나아가 문재인 정부의 순수성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뛰어 넘는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이 슬프디 슬픈 국정농단 사태의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는 것은 분명 대한민국이 잃어버린 9년을 되찾는 시발점이 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우려스러운 점. ‘박근혜 유죄’라는 목적을 위해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선택한 것은 아닌가. 한국 재벌의 상징인 삼성, 그리고 이재용이라는 덫에 갇혀 있지는 않은가.

7일 특검의 구형과 함께 이재 지리했던 1심 재판은 이재 재판부의 판단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재용 재판이 잃어버린 9년을 찾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특검은 애초부터 이재용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재용의 구속이 박근혜 유죄의 열쇠라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이로 인해 더 중요한 것들을 놓쳤다는 비판도 받았다.

절대권력으로 군림하고자 했던 대통령 박근혜와 그를 이용해 부와 권력을 누리려 했던 최순실 일당에 대한 단죄를 위해 이재용이 희생양이 될 이유를 특검은 재판과정에서 명확하게 밝히지 못했다.

이제 재판부가 해야 할 것은 정치적 상황과 여론으로부터 자유롭게, 인민재판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도록, 최대한 냉정하게, 법에 근거해서만 판단하는 일이다. 그 판단이 역사에 떳떳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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