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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흥행은 지금 ‘이경영으로 통하고 있다’

[NW 기획] 충무로 흥행은 지금 ‘이경영으로 통하고 있다’

등록 2014.09.17 16:22

김재범

  기자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1987년 영화 ‘연산일기’의 단역 ‘중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 ‘타짜-신의 손’이 개봉해 승승장구 중이다. 아직 개봉 대기 중인 영화만 ‘제보자’ ‘협녀:칼의 기억’ ‘은밀한 유혹’ ‘허삼관 매혈기’에 이어 촬영 중인 액션 대작 ‘암살’까지. 무려 101편의 영화가 그를 거쳐갔다. 한때 충무로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다 아는 그 사건으로 대중들의 기억 속 저편으로 지워졌다. 그러나 데뷔 28년차의 이 베테랑은 충무로에 필요한 존재였다. 그 사건에서 깨끗하게 벗어난 뒤 조금씩 기지개를 켰다. 2012년 영화 ‘남영동 1985’에서 실제 모델을 모티브로 한 고문 경찰역을 징그러울 정도로 사실감 넘치게 소화했다. 그리고 대중과의 만남을 시도했다. 이제 충무로는 그가 출연한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로 나뉘게 됐다. 배우 이경영의 존재감이다.

(사진 위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26년, 제보자(사진 위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26년, 제보자

◆ 감독들이 인정한 메소드 연기의 1인자

100편이 넘어버린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는 것은 사실 별 다른 의미가 없다. 가장 최근작부터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 한 가지가 눈에 띈다.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에는 무조건 이경영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소름 끼치는 연기력은 대중들에게 깊게 각인됐다.

2011년 개봉한 영화 ‘부러진 화살’은 판사에게 석궁을 쏜 한 대학교수의 법정 투쟁기를 그린다. 이 영화에서 이경영은 법조계의 만연한 뿌리 깊은 카르텔의 단편을 판사란 인물을 통해 그려냈다. 당시 연출을 맡은 정지영 감독은 “그냥 두기엔 너무도 아까운 재능의 소유자”라며 “그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었다”고 이경영을 ‘부러진 화살’에 합류시킨 배경을 전했다.

작은 배역이었지만 그의 서늘한 기운은 현실과 맞닿은 ‘부러진 화살’을 더욱 사실감 넘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물론 그의 이런 능력이 극대치로 끌어 올려진 것은 이듬해 개봉한 ‘남영동 1985’에서다. 고 김근태 의원의 고문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이 영화에서 이경영은 고문 기술자 이두한역을 맡았다. 당시 그는 고문을 당하는 상대 배우인 박원상의 신체 반응에 빠져 몸을 누르고 힘을 줘 자칫 위험할 뻔한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고. 그는 영화를 본 뒤 “내가 괴물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며 고개를 저었다.

다음 달 개봉을 앞둔 ‘제보자’에선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의 당사자인 박사 역을 소화했다. 백발의 헤어스타일과 또박또박 떨어지는 힘있는 ‘딕션’(발음) 화려한 손동작, 안경 너머의 확신에 찬 눈빛과 때때로 드러나는 서늘한 기운은 실제 인물이 “과연 저랬을까”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들 정도다. 최근 언론시사회에서 그는 “너무 민감한 캐릭터라 고민이 많았다”면서 “그 분과 같은 마음을 지금도 갖고 있는 분들에 대한 작은 경고가 이 영화에 담겨 있다”며 자신의 연기 소감을 대변하기도 했다. 개봉 대기 중인 용산참사를 다룬 ‘소수의견’에서도 이경영은 국가 권력을 대변하는 판사역을 연기한다.

물론 그의 연기는 실존 인물의 악함으로만 그려지지는 않았다. 광주민주화 항쟁을 그린 웹툰 원작 ‘26년’에선 그 사람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김갑수란 인물을 연기해 그 시절 아픔을 가진 수 많은 이들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삼성반도체 직원의 백혈병 사망 사건을 그린 ‘또 하나의 약속’에선 사건의 결정적인 키워드를 쥔 인물로 등장해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사진 위부터) 군도, 해적, 타짜-신의 손(사진 위부터) 군도, 해적, 타짜-신의 손

◆ 장르 불문, 연기 불문, 분량 불문···존재감 ‘최강’

이경영에게 충무로 컴백이란 말은 사실 어울리지 않는다. 불미스런 사건 이후에도 그는 여러 작품에 단역 혹은 카메오 출연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그의 필모그래피 최고 걸작 중 한 편인 ‘하얀전쟁’(1992년)의 감독 정지영을 통해 본격적으로 충무로에 모습을 드러냈다. ‘부러진 화살’과 ‘남영동 1985’ 단 두 편으로 그는 완벽하게 충무로를 장악했다.

현재 그가 출연한 영화 가운데 올해 개봉한 작품은 ‘해적: 바다로 간 산적’ ‘군도: 민란의 시대’ ‘타짜: 신의 손’ 세 편이다. 누적 관객 수만 1600만을 넘어섰다. 세 편의 장르는 액션이 기본이지만 이경영은 이들 작품에서 조금씩 다른 패턴을 보인다. ‘해적’에선 잔인한 해적 두목으로 나오지만 때로는 코믹한 디테일을 살리며 극 전체의 방향타를 잘 지켜냈다. ‘군도’에선 수많은 캐릭터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스토리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었다. ‘타짜’에선 속고 속이는 도박판의 생리를 ‘꼬장’이란 인물을 통해 숨결 하나까지 살려냈다.

출연 분량으로 그의 존재감을 따지기도 힘들다. 2012년 개봉해 느와르 열풍을 불고 온 영화 ‘신세계’에선 영화 초반 몇 장면 등장하지 않은 ‘석회장’ 역을 소화하며 명품 존재감의 이유를 선보였다. 2011년 신드롬을 일으킨 ‘써니’에선 중년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첫 사랑으로 출연했다. 지난해 개봉한 ‘관능의 법칙’에선 조민수와 함께 중년의 육체적 사랑에 대해 온 몸으로 관객과 대화를 나눴다.

1990년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이경영이 코미디 연기도 감상이 가능하다. 당시 작품들을 보면 그의 코미디 소화 능력은 발군의 코미디 소화 능력을 지닌 전문 코믹 배우들 이상을 넘어선다.

영화 ‘제보자’를 연출한 임순례 감독은 극중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을 벌인 이장환 캐릭터에 대한 대중들의 논란을 우려한 목소리에 “문제가 된다면 그건 100% 이경영 배우의 책임이다”면서 “너무도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한 그의 책임이 아니고 무엇이겠나”라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한 충무로 중견 제작사 관계자는 뉴스웨이와의 통화에서 “이경영의 존재감은 현재 한국영화 제작 시장에서 독보적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면서 “그가 소화해온 배역들을 되짚어 보면 ‘대체 불가’란 단어가 왜 생겨났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고 그의 존재감을 평가했다.

바야흐로 이경영의 시대다. 이경영도 이런 시대가 올지 몰랐을 것이다. 1980년대 청춘 하이틴 스타에서 중년의 파워로 거듭난 이경영의 존재감, 배우들의 좋은 롤 모델로 제시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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