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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과도한 도시 정비 기부채납···등골 휘는 건 건설사 아닌 주민

오피니언 기자수첩

과도한 도시 정비 기부채납···등골 휘는 건 건설사 아닌 주민

등록 2023.11.17 17:45

수정 2023.11.17 18:33

장귀용

  기자

reporter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지역 곳곳에서 기부채납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부터 급등한 공사비로 인해 강남 같은 금싸라기 땅이나 저층 주거지를 고밀개발 하는 재개발사업지가 아닌 곳에선 막대한 분담금이 예상되고 있어서다.

흔히 정부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에 대해서 '개발이익 환수'를 이야기한다. 헌 집을 뻔쩍뻔쩍한 새집으로 바꾸는 데다 층수까지 높아지니 '맨 입'으론 안 된다는 논리다. 사업을 추진하는 시행자가 자기 비용을 써서 시설이나 공원, 임대주택을 만들어서 공공에 주는 기부채납이란 제도가 탄생한 배경이다.

부동산 경기가 좋고, 공사비 부담도 적었던 시절엔 기부채납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부채납하고도 일반분양 수익이 많이 남으니 사업추진에 속도를 내려고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이다. 단독주택 등 저층 주거 밀집 지역을 재개발하거나 5층 이하 저층아파트나 빌라를 재건축하던 시기와도 맞물려 일반분양도 많았다.

문제는 지난해부터 공사비가 급격히 오르면서 이 미묘한 균형이 깨진 것이다. 때마침 중‧고층 이상으로 이뤄진 1기 신도시 등 노후 택지들의 재건축 시기가 도래한 것도 맞물리면서 더욱 문제가 커졌다.

사실 기부채납은 지나치게 과도한 부분이 없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녹지 비율과 임대주택 공급단가다. 녹지 비율은 관련법이 제정된 지 오래돼 현실성이 떨어지고, 임대주택 공급단가는 정부가 기준이 되는 표준건축비를 과도하게 억누르면서 실제 비용과 괴리가 생겼다.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공원녹지법)은 1000가구 이상 주택을 조성할 때 부지의 30~40%를 녹지로 공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규모로 아파트를 공급하는 시행사업자에게 거주자의 주거 쾌적성을 제공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이미 녹지를 공급하고 지은 단지도 재건축하면 또다시 녹지를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늘어난 가구 수가 아니라 기존 가구 수를 포함한 전체 가구 수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재건축할 때마다 녹지를 기부채납해야 한다. 1번 하면 부지가 70%로 줄어들고, 2번 하면 49%, 3번 하면 34.3%로 쪼그라드는 이상한 법률이다.

특히 1기 신도시들과 서울의 대표적인 서민 주거 지역인 노원구 상계지구와 도봉구 창동지구, 강서구 가양지구는 이 법의 최대 피해자가 될 전망이다. 이들 지역은 택지개발을 통해 개발된 지역이다. 최초 분양 때 이미 녹지 등 비주거용지 조성비를 지불한 곳이다. 그런데도 재건축을 하면 또 공원을 만들어서 뺏겨야 한다.

심지어 이곳엔 서민 주거 안정을 이유로 초창기에 임대로 공급했다가 분양 전환한 단지가 많다. 이들 단지 대부분은 10~21평 수준의 소형평면으로 조성됐다. 이 때문에 가구수가 1000가구가 넘는데 부지 면적은 다른 단지의 절반 수준인 곳이 많다. 재건축으로 녹지를 기부채납하고 나면 창문으로 앞 동 주민과 담소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임대주택 공급단가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와 일부 시민단체는 공급단가가 올라가면 임대료 부담이 커져 서민들의 주거 안정이 불안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단가 하락으로 인한 적자를 만회하려고 단지 전체가 부실 공사의 늪에 빠지거나, 임대주택을 분양주택과 차별해서 짓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실제로 임대주택 공급단가의 기준이 되는 '표준건축비'는 분양가상한제 단지의 공사비 기준이 되는 '기본형건축비'의 57%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심지어 지하층 공사비는 포함이 안 된다. 가구 수 대비 주차장 면적을 갖춰야 하는 규정 때문에 공사비가 투입되지만 한 푼도 받을 수가 없는 것.

특히 용도구역 종상향으로 얻은 용적률의 절반을 임대주택으로 공급할 때, 기가 막히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경우엔 토지는 기부채납하는 것으로 봐 땅값을 쳐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1채 당 억대의 손해가 발생한다.

흔히 개발이익 환수라고 하면 '악독한 건설업자'나 '강남 부자'의 지나친 돈벌이를 공공에서 환수하는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평생을 바쳐 낡은 집 한 채 마련했을 뿐인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것과 다름없다. 건설사는 오른 공사비만 챙기면 그뿐이다.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건 조합이다. 조합은 주민으로 이뤄진다. 주민은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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