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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한진해운 사태 피했다···해운 담합 23개사에 962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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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3년 만에 최종 결론, 8000억원 우려는 해소
쟁점된 해운법 29조·공정거래법 58조 허용 안해
담합회의 소집한 동정협도 1억6500만원 과징금
추가진통 불가피···해운업계 행정소송 준비 돌입
한-중·일 항로도 추가 제재, 해운경쟁력 약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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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혜수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외 해운사들의 운임 담합 혐의에 대한 제재 수위를 대폭 낮추면서, 2016년 ‘한진해운 사태’ 재발에 대한 시장 우려가 해소되는 분위기다.

당초 공정위는 “원칙대로 처리하겠다”는 강경 태도를 고수해 왔다. 하지만 해운업계는 물론 학계와 정치권까지 나서 제재 방침 철회를 요구하면서, 최대 8000억원이던 과징금 규모를 8분의 1 수준으로 축소했다.

공정위는 18일 지난 2003년 12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총 541차례의 회합 등으로 한-동남아 수출·수입 항로에서 총 120차례 운임을 합의한 12개 국적선사와 11개 외국적선사 총 23개 선사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962억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국적 12개사는 ▲고려해운 ▲남성해운 ▲동영해운 ▲동진상선 ▲범주해운 ▲SM상선 ▲HMM(옛 현대상선) ▲장금상선 ▲천경해운 ▲팬오션 ▲흥아라인 ▲흥아해운이다.

외국적 11개사는 대만 ▲청리네비게이션씨오엘티디(CNC) ▲에버그린마린코퍼레이션엘티디(에버그린) ▲완하이라인스엘티디(완하이) ▲양밍마린트랜스포트코퍼레이션(양밍), 싱가포르 ▲씨랜드머스크아시아피티이엘티디(씨랜드머스크) ▲퍼시픽인터내셔널라인스리미티드(PIL) ▲뉴골든씨쉬핑티이엘티디(COSCO), 홍콩 ▲골드스타라인엘티디(GSL) ▲오리엔트오버씨즈컨테이너라인리미티드(OOCL) ▲에스아이티씨컨테이너라인스컴퍼니리미티드(SITC) ▲티에스라인스엘티디(TSL)이다.

담합 횟수는 선사별 시기와 종기는 상이하지만, 가장 처음 담합에 참여해 마지막까지 담합을 지속한 고려해운과 HMM, 장금상선, 흥아해운을 기준으로 했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2003년 10월 한-동남아, 한-중, 한-일 3개 항로에서의 동시 운임 인상에 대한 고려해운, 장금상선, 흥아해운 등 주요 국적선사 사장간의 교감을 계기로 담합이 시작됐다. 이후 ‘동남아정기선사협의회’(동정협) 소속 기타 국적선사와 IADA 소속 외국적선사들도 차례로 합류했다.

이들 선사는 한-동남아 항로 운임을 인상하거나 유지할 목적으로 기본운임의 최저수준, 부대운임의 신규도입 및 인상, 대형화주에 대한 투찰가격 등을 합의, 실행했다.

공정위는 23개 선사가 15년간 기본운임의 최저수준, 기본운임 인상, 각종 부대운임 도입 및 인상, 대형화주에 대한 투찰가 등 제반 운임을 총체적·망라적으로 합의했다고 판단했다.

또 자신들의 담합이 공정거래법에 위반되는 것을 인지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이를 은폐했다고 봤다. 선사들간 합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다른 선사들의 화물은 서로 침탈하지 않아 기존 거래 화물을 상호 보호하고, 합의운임을 준주하지 않으면 선적을 거부한 점도 지적했다.

쟁점이 된 해운법 제29조와 공정거래법 제58조는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해운법 29조에 따르면 해운사는 운임·선박 배치, 화물의 적재, 그 밖의 운송조건에 관한 계약이나 공동행위를 할 수 있다. 다만 공동행위를 하려면 화주 단체와의 사전 협의, 해양수산부 신고, 자유로운 입·탈퇴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공정거래법 58조는 ‘다른 법령에 따른 정당한 행위’에 대해서만 공정거래법 적용을 배제한다고 명시돼 있다. 풀어서 설명하면, 해운법 29조와 같이 특정 법률에서 인정한 공동행위는 공정거래법 적용을 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운법에 따른 공동행위가 인정되려면, 절차적으로 선사들은 공동행위를 한 후 30일 이내에 해수부장관에게 신고해야 하고, 신고 전에 합의된 운송조건에 대해 화주단체와 서로 충분히 정보를 교환·협의해야 한다.

공정위는 해운법상 신고와 협의 요건을 준수하지 않은 만큼, 운임 담합이 정당한 행위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공정위는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962억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세부적으로는 국적선사는 ▲고려해운 296억4500만원 ▲흥아라인 180억5600만원 ▲장금상선 86억2300만원 ▲HMM 36억700만원 등이고, 외국적선사는 ▲완하이 115억5100만원 ▲TSL 39억9600만원 ▲에버그린 33억9900만원 등이다.

특히 운임 합의를 위한 회의를 소집하고 합의된 운임 준수를 독려한 동정협에 대해서도 사업자단체 금지행위 위반으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억6500만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해운사 운임 담합 사건은 한국목재합판유통협회가 2018년 8월 공정위에 해운사의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공정위가 최종 결론을 내린 것은 지난해 5월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격)를 발송한지 약 8개월 만이다. 당시 공정위 심사관은 전체 매출액의 약 10%를 적용한 최대 8000억원 규모의 과징금 부과가 필요하다고 봤다.

심사보고서를 받은 해운사들은 즉각 반발했다. UN에서 인정하는 관행이고, 해운법도 허용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또 담합행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고, 부당이익 역시 취득하지 않아 처벌이 불가능하다고 맞섰다.

150여개 해운업체를 회원사로 둔 한국해운협회는 곧장 ‘해운기업 공동행위 조사 간담회’를 열고 “화주 단체와의 사전 협의, 해양수산부 신고, 자유로운 입탈퇴 등 해운법에 따른 요건을 모두 충족했고 정당한 공동행위였다”고 해명했다.

특히 공정위 제재가 현실화될 경우, 국가 차원에서 추진 중인 해운산업 재건 이행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를 쏟아냈다. 협회는 “한진해운 파산 이후 추진 중인 해운산업재건계획이 물거품이 될 것”이라며 “선복 부족으로 수출 물류에 애로가 있는 상황에서 과징금을 내기 위해 선사들이 배를 팔면 선복 부족 현상은 심화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해운법 주무부처인 해수부도 선사들의 편에 섰다. 해수부는 지난 7월 15년간 19건의 주된 공동해위가 모두 신고됐고, 122건의 세부협의는 해수부에 신고할 필요가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해운사 담합 사태의 파장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참전으로 더욱 커졌다. 국회 농해수위를 중심으로 공정위의 해운담합 규제 권한을 뺏고 과거 운임담합 행위도 소급적용하자는 취지의 해운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이 법안은 9월 법안소위까지 통과했다.

학계와 시민단체 등도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원칙대로 처리할 것”이라는 방침을 거듭 밝히며 대립하기도 했다.

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해수부 국장이 직접 참고인으로 심판정에 출석해 충분히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줬고, 관계부처 의견을 주의 깊게 청취할 수 있었다”며 “조치 수준을 결정하면서 산업 특수성 등을 충분히 감안했다”고 밝혔다.

전원회의는 담합으로 인한 영향이 제한적인 점 등을 고려해 수입 항로는 과징금 부과 대상에서 제외했다.

공정위는 “이번 조치는 15년간 해운시장에서 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 불법적으로 이뤄진 선사들의 운임 담합 관행을 타파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데 의의가 있다”며 “정기선사들의 운임 관련 공동해위에 대한 해운당국의 관리가 실질화되고, 수많은 수출입 기업들인 화주들의 피해가 예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운업계는 ‘제2 한진해운’ 사태를 피할 수 있게 됐지만, 향후 진통을 우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애초 해운업계는 과징금 부과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인 만큼, 법무대리인 선정 등 협의를 마치는 대로 행정소송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또 한-동남아 항로 뿐 아니라 한-중, 한-일 항로 관련 담합 조사도 마무리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심사보고서를 전원회의에 상정하고 심의할 계획이어서 추가 제재가 불가피해 보인다.

더욱이 1978년 해운법 개정 이후 45년간 이어져온 선사 담합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에 따른 국적선사들의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풍부한 자금력을 앞세운 대형선사들의 저가공세에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세정 기자 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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