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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능력주의’는 ‘불공정’의 해결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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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er
1. “직장이 서울에 있는 사람들이 왜 서울에 안 살고 경기도에 사는 건가”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어느 날 오전 7시. 처음 기자 생활을 시작했던 당시 40년이 훌쩍 넘은 중견 전문 매체의 대표님께서 직접 주재하신 회의에서 하신 첫 번째 말씀이시다.
당시만 해도 기자들 출근 시간이 9시이고 기자라야 예닐곱에 불과했던 터라 편집회의도 1주일에 한번 정도 불규칙적으로 있던 시절이다.
부산지사장을 겸하던 사장님은 한 달에 두어번 서울 본사를 방문하시고 한 달에 한 번 꼴로 전체 회의를 소집하셨다.
보통은 8시에서 8시 30분 사이에 회의를 하는 데 이 날 따라 전날 경영지원실을 통해 다음날 오전 6시 40분에 회의를 하겠다는 통보가 날라왔다.
사장님이 위의 글처럼 말씀하신데는 이유가 있으니 간부급을 제외하고 기자들과 일반 직원들까지 한 15명 정도의 직원들 중 7시 회의시간에 맞춰 출근한 이가 두엇에 불과했다.
사장님 말씀처럼 누구는 인천에 살고, 누구는 수원에 살고, 누구는 남양주에 살고… 지금과 달리 그 때만 해도 수도권에서 강남으로 들어오는 교통편이 수월치 않았고 차를 가진 직원들도 별로 없었으니 갑작스런 이른 아침 호출에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는 않았을 터다.
갑작스런 호출, 여의치 않은 교통편으로 인한 지각자 속출. 이런 상황에서 열린 회의에서 사장님의 첫 마디가 “왜 서울에 안 사냐“였으니...
물론 이른 아침 호출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들 대 놓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당시 기자를 포함해 서울 변방, 혹은 서울 밖에 살던 직원들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월급을 많이 주던가”
“다 당신처럼 집 안에 돈이 많은 줄 아슈”

2. 막내삼촌에겐 자녀가 둘이 있었다. 큰 아이는 딸, 둘째는 아들. 막내삼촌은 필자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제외하곤 가장 존경하는 어른이다. 지하철 1호선 기관사로 시작해 KTX 1호 기장을 거쳐 작년 말 정년퇴임을 했다.
두 자녀는 전교 10등 안에 꼭 들 정도로 공부를 참 잘 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말이다.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성적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고 한 녀석은 수도권의 한 4년대 대학으로, 한 녀석은 수도권의 한 전문대로 진학했다.
모두들 놀랄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모두 의아해 하는 와중에 막내삼촌과 숙모는 담담하게 결과를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어째서 일까. 나중에 들어보니 중학교 때 처럼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도 이 두녀석은 학원을 다니지 않았고, 당시 흔했던 과외도 한 번 받질 않았다.. (참고로 기자와 막내삼촌은 11한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그러니 두 사촌동생과 기자와의 나이 차이는 막내삼촌과의 기자와의 차이보다 훨씬 더 난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몰아넣고 싶지 않았던, 자유롭게 키우고 싶었던 막내삼촌과 숙모의 의지가 컸기 때문이다. 막내삼촌 내외는 자녀들에게 학원이라곤 어릴 적 태권도 학원과 피아노학원을 다니게 한 게 전부다.
아이들 역시 이런 부모님의 결정에 항의를 하거나 반발하지 않고,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삐뚤어지지 않고 학업에 열중했다.
두 녀석 중 여자 아이는 일찍 결혼해 행복하게 살고 있고, 남자아이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철도 기관사로 근무 중이다.
후회는 없었을까. 아직 막내삼촌과 숙모에게 어떤 대답을 들어본 적은 없다. 다만 두 분 삶의 궤적을 볼 때 후회가 있었다 하더라도 아주 잠깐이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촉발한 ‘능력주의’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마침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의 신간 가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란 제목으로 한국에 소개된 후다.
이 대표의 능력주의는 일단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당 내에 일정 지분이 있는 모든 기성 정치인을 다 물리치고 대표가 된 데는 ‘능력주의’가 일등공신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이 대표는 당 대표가 된 후에도 능력주의를 정당 운영에 직접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토론배틀을 통한 대변인 선발은 모두의 예상보다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오죽하면 대통령까지 나서서 (간접적이긴 하지만) 견제했을까.
단지 대통령만 견제하는 게 아니다. 여당인 민주당은 물론이거니와 학계를 비롯해 하다못해 보수언론들 조차도 이 대표의 능력주의를 우려한다.
왜일까. 능력주의는 국가든 국민이든 최우선으로 둬야 할 보편적 가치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말이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평등은 차별없음’이다. 그런데 이 ‘차별없음’은 이 대표가 말하는 것처럼 여성할당제, 청년할당제같은 차별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 대표는 “공정을 말하면서 왜 여성할당제를 하느냐“ “청년할당제가 오히려 청년을 차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국민의힘 당 대표로 자신이 당선된 것, 최고위원 4명중 3명이 여성인 것, 대변인 선출 토론배틀 최종 4인 중 3명이 2030인 것 등이 모두 능력주의에 기반한 룰의 변경에 따른 성과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당선된 사람들은 그러니 모두 자신의 능력에 따라서 당 대표도 되고, 최고위원도 되고, 대변인도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걸로 된 것인가. 우리나라 기업의 관리자 중 여성 비율은 2018년 기준 12.1%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있다. 또 저임금 노동자 10명 중 6명은 여성이라는 통계도 있다. 또 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성 직장인은 여성 직장인에 비해 36% 높은 임금을 받는다.
이 대표는 최근 한 라디오프로에서 “능력주의의 부족한 지점에 대해서 대안을 제시하는 성격 정도까지 그치고, 실제로 능력주의보다 나은 어떤 방법은 뭐냐에 대해가지고는 사회학자들이 이야기를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얘기를 못하는 게 아니라 얘기를 해도 들어먹질 않는다는 게 문제라는 건 정말 모르는 것일까.
이준석 대표의 능력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시스템’은 무시하고 ‘룰’만 바꾸려는 데 있다. 어차피 세상엔 ‘룰’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룰’에도 커트라인은 있기 때문이다.

황의신 경제에디터 ph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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