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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절친 악당들’, 임상수가 만든 110분의 ‘판타지코스터’

[무비게이션] ‘나의 절친 악당들’, 임상수가 만든 110분의 ‘판타지코스터’

등록 2015.06.22 07:00

김재범

  기자

 ‘나의 절친 악당들’, 임상수가 만든 110분의 ‘판타지코스터’ 기사의 사진

영화를 본 뒤 가장 궁금해진 단 한 가지. 이 영화의 시나리오였다. 일반적으로 대본이란 것은 배우들에게 상황과 설명 그리고 그 순간의 대사를 전한다. ‘누가 누구와 어떤 상황에서 만나 이런 얘기를 나눈 뒤 그런 사건을 계획한다’ 정도의 설명이 들어가야 그 모든 것을 연기할 배우도 충분히 납득이 되고 고개가 끄덕여질 것 아닌가. 임상수 감독의 신작 ‘나의 절친 악당들’은 이런 설명이나 납득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인물들이 나오고 상황이 발생하면 움직인다.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맥이 부족한 개연성 결여다. 하지만 좋은 쪽으로만 보자면 본능에 충실한 감정 얘기다. 누구보다 사회 비판적인 시선을 세우고 영화감독으로 살아오던 ‘베테랑’ 임상수가 개연성 결여를 잡아내지 못했다고는 믿지 않는다. 칸 영화제 경쟁부문까지 이름을 올린 감독의 실수라고 하기엔 너무 가볍다. 그렇다면 이유는 두 번째다. “그저 보이는 데로 느끼고 즐겨라.”

영화 속 주인공 지누(류승범)과 나미(고준희)는 평범한 20대다. 사실 두 사람은 ‘루저’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착한 설정이 많다. 혼자 살지만 번듯한(?) 집을 갖고 있다. 어설프지만 직업도 있다. 자랑할 거리는 아니지만 각자 타고 다닐 것도 있다. 요즘 ‘루저 청춘’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더욱이 정말 다른 것은 지누와 나미에겐 ‘초긍정’의 마인드란 어마무시한 무기가 있단 점이다.

 ‘나의 절친 악당들’, 임상수가 만든 110분의 ‘판타지코스터’ 기사의 사진

영화는 시작과 함께 지누의 걸쭉한 독백이 흐른다. “월급쟁이 그거 X같은 거야”라고 말하는 그의 속내는 일탈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대변한다. 쓰러져가는 한 건물에서 히피스타일의 라이프를 즐기며 맨발로 렉카차를 운전하는 나미는 “겨우 10만원 벌자고 내가 가야 돼”라며 시니컬하다. 최저시급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요즘 겨우 10만원이란 말은 오만이자 자만심이다. 하지만 영화에선 그저 ‘쿨’한 느낌이 전부다. 이렇게 두 사람은 그저 쿨 한 청춘의 자화상이다. 하기 싫으면 안하고, 하고 싶으면 그저 하고 마는 요즘 청춘과는 전혀 다른 그런 청춘 말이다.

시쳇말로 ‘꼴리는 대로 사는 무대포 청춘’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돈 가방이 툭하고 떨어진다. 자, 여기서 질문. 이 돈 가방은 이 청춘들에게 보약이 될까? 독약이 될까?

 ‘나의 절친 악당들’, 임상수가 만든 110분의 ‘판타지코스터’ 기사의 사진

여기서부터 ‘나의 절친 악당들’은 보이는 데로 즐기는 데로 또 느끼는 데로 흘러가라고 강조한다. 어떤 수식도 필요 없고, 골치 아픈 고민도 없다. 약이 되던 독이 되던 말이다. “왜 고민을 하냐”고 되물을 정도다. 한 손에는 수십억은 족히 넘어 보이는 돈 가방이 있다. 다른 한 손에는 권총까지 얻게 됐다. 지누와 나미, 이 두 청춘 남녀가 집중하는 것은 하루 한 번 혹은 두 번의 육체관계와 돈쓰기 뿐. 당연히 돈 가방 주인은 이들을 죽어라 쫓는다. 그럼에도 이들은 단순하다. “죽을 때 죽더라도 한 번 하자”며 서슴없이 침대로 몸을 던진다. “죽을 때 죽더라도 돈이나 써보자”며 5만 원권 돈뭉치를 이리저리 던지고 다닌다.

 ‘나의 절친 악당들’, 임상수가 만든 110분의 ‘판타지코스터’ 기사의 사진

이 정도면 사실 한국영화에선 보기 드물 정도, 아니 장르 영화적으로도 가장 완벽한 판타지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도 주인공들은 ‘쿨’함을 유지한다. 폭력 앞에선 오히려 비꼬는 웃음으로 일관한다. 영화 시작과 함께 터진 지누의 대사가 떠오른다. ‘월급쟁이의 X같은 상황’을 언급한 묘사는 치열하다 못해 비열하고 지리멸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정글 같은 우리 사회 속에서 고개 숙인 채 생존 본능에만 촉각을 세우는 젊은 청춘들에 대한 일갈이다. ‘그 상황 다 견디고 어떻게 사냐’는 질문의 해답이 바로 ‘나의 절친 악당들’의 지누와 나미의 쿨한 대처 능력이다. 본능에 충실한 삶이다. 겨우 20대다. 이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냐는 식의 ‘대놓고 맞짱 분위기’는 분명 지금의 우리들이 잃고 지내는 아쉬움이자 패기다. 그 잃어버린 패기, 다시 말해 청춘들에게 임상수는 대놓고 욕지거리를 한다. 영화 속 하이라이트 장면에 등장하는 엑기스 대사 한 마디다. “시키는 대로 다 한 게 죄다”라며 화면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박력은 분명 우리 청춘들에 대한 지적질이다. 때론 엇나가더라도 좋다. 그게 바로 청춘의 본질 아니냐고 말이다.

영화 곳곳에 의미를 부여할 만한 장치들이 눈에 띄게 많다. 사과를 먹는 인물들, 시종일관 헬멧을 쓰고 다니는 지누의 모습, 깜짝 카메오 임상수 감독의 유일한 대사 한 마디 “개XX” 등등. 특히 사건 전개 막바지에 등장하는 스타일리시한 액션 장면도 무언가 의미를 부여할 만한 냄새가 강하다. 하지만 별 뜻 없다. 임상수 감독은 “사회 비판은 충분히 했다. 이젠 그저 보고 즐기면 그만인 얘기로 다가서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나의 절친 악당들’, 임상수가 만든 110분의 ‘판타지코스터’ 기사의 사진

아무런 뜻 없다. 의미 부여를 할 필요도 없다. 지누와 나미의 어드벤처 도심 활극에 몸을 맡기면 그만이다. 두 사람의 본능이 흥미롭다면 ‘나의 절친 악당들’의 110분은 내려오기 싫은 현실 탈피 판타지코스터가 된다. 물론 그 스릴이 가져다주는 짜릿함이 무섭다면 당신은 현실 속 ‘시키는 대로 하고 사는’ 인생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나의 절친 악당들’, 임상수가 만든 110분의 ‘판타지코스터’ 기사의 사진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나. 아니 한 번은 즐겨볼만 하지 않나. ‘나의 절친 악당들’이 권하고 있다. 한 번 쯤은 벗어나 보라고. 개봉은 오는 25일.

 ‘나의 절친 악당들’, 임상수가 만든 110분의 ‘판타지코스터’ 기사의 사진

PS. 극중 아프리칸 폭력조직 보스로 출연한 양익준 감독 겸 배우의 기상천외한 영어 실력을 귀담아 들어보자. 묘한 중독감이다. 여기에 가수 김C가 오랜만에 카메오로 등장한다. 그 역시 대단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물론 최고의 카메오는 강렬한 대사 한 마디를 남기고 장렬히 전사하는 임상수 자신이다.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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