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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비수사’ 김윤석의 인간미 넘치는 카리스마 ‘존재감’

[인터뷰] ‘극비수사’ 김윤석의 인간미 넘치는 카리스마 ‘존재감’

등록 2015.06.22 00:00

김재범

  기자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추격자’의 ‘엄중호’는 보도방 여자들을 등쳐먹고 살던 업주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비열함 보단 인간적인 연민이 숨어 있었다. ‘황해’의 ‘면정학’은 피도 눈물도 없는 조선족 폭력조직 보스였다. 하지만 그를 그렇게 만든 건 아마도 다민족 사회에서 생존해야 했던 소수민족의 본능이었을 것이다. 두 인물 모두에겐 삶의 본질이 숨어 있었단 얘기다. 사실 배우 김윤석은 이 단 두 편으로 ‘끔찍한’ 연기의 대명사처럼 굳어져 왔다. ‘김윤석은 무섭다’란 루머 아닌 루머도 그렇게 기자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윤석처럼 따뜻하고 김윤석처럼 유머스러우며, 김윤석처럼 인간미 넘치는 배우도 사실 그리 흔치는 않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부드러운 남자인지 아느냐고 억울해 한다. 물론 이마저도 웃으면서 농담처럼 던졌다. ‘완득이’의 ‘동주’ 선생님 같은 모습이 아직도 선하게 남아 있는 이 남자가 왠지 모르게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극비수사’ 속 공길용 형사의 인간미도 어떻게 보면 김윤석 자신의 속내에서 뿜어져 나온 그것일 뿐인데 말이다.

영화 ‘쎄시봉’에서 짧지만 강렬했던 멜로 연기를 선보인 그는 이제 완연하게 인간미의 결정체로 집결된 모습이었다. 사실 김윤석은 그저 ‘강렬하고 카리스마다운’의 다른 호명처럼 대중들에게 각인돼 왔다. 그래서 ‘극비수사’ 속 ‘형사 공길용’을 연기한다고 했을 때, 어떻게 범인을 무자비하게 체포하고 고문하고 자백을 받아낼까란 상상마저 들었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이거 자꾸 왜 이래요. 참나(웃음). 그 분이 얼마나 점잖고 대단한 분이신데 말이에요. 큰일 날 소리를(웃음). 김중산 선생님이나 공길용 선생님이나 두 분다 아직 생존해 계시는 실존 인물들이잖아요. 사실 이렇다 저렇다 함부로 말씀드리기가 참 조심스러워요. 특히 공 선생님은 아직 뵌 적이 없어요. 어떤 분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김 선생님은 영화 촬영 끝난 뒤 식사를 한 번 했는데, 정말 잘생기셨어요. 하하하.”

사실 배우들에게 실존 인물을 연기할 기회는 충분히 많다. 하지만 ‘극비수사’ 속 김윤석이 연기한 공길용 형사는 좀 다르게 다가왔다. 우선 배우들이 연기하는 실존 인물들은 대게 ‘역사적 위인’이거나 혹은 ‘아주 유명한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반면 공길용 형사는 그 어느누구도 모르는 일반인이다. ‘극비수사’의 뒷얘기가 곽경택 감독의 손에 공개되기 전까지는.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아마 어떤 인물의 ‘전기’를 다뤘다면 저도 엄청 신경쓰였겠죠. 그런데 대중은 공길용 형사가 누구인지 어떤 분인지 몰라요(웃음). 내 맘대로 연기를 하든, 사실에 충실하든 아무도 모르죠. 더욱이 영화의 초점은 재현이 아닌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움을 만드는 거잖아요. 단 하나, 그 분이 굉장히 원칙적이란 점은 강조하려고 애썼죠. 과거 인터뷰에서 힌트를 얻었죠. 선생님께서 유괴 사건은 범인 체포가 우선이 아니라, 아이를 구하는 게 먼저란 말씀을 하셨더라고요. 멋지잖아요. 하하하.”

그런 인물이 등장하는 ‘극비수사’를 김윤석은 닭백숙 같은 영화라고 불렀다.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만 원칙을 지키는 인물이 만들어 내는 담백한 인간미에 대한 얘기. 더군다나 ‘극비수사’는 그동안 한국영화 안에서 무수히 반복된 수사 장르물이었다. 반복되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장르와 스토리를 거부하는 김윤석으로서는 의외의 선택이었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아니요. ‘닭백숙’이라고 말한 부분에 다 들어 있어요. 내가 선택한 이유는. 일단 수사물이라는 장르는 몇 년 동안 스릴러 형식과 결합되면서 정형화 된 측면이 강해요. 만약 ‘극비수사’ 도 비슷했다면 전 안했습니다. 하지만 읽어보니 전혀 다른 방식으로 애기를 풀어가더라고요. 기교 같은 게 가미된 게 아니라, 어찌 보면 정면돌파였죠. 스토리와 캐릭터로만 영화를 풀어간다? 이거 담백하겠다. 이런 생각이 확 들었죠.”

김윤석이 말한 담백함 혹은 닭백숙이란 단어는 ‘극비수사’가 담은 인간미에 대한 다른 말일 것이다. 언론시사회 후에도 쏟아진 호평의 대부분이 그랬다. 그리고 공길용 형사와 유해진이 연기한 김중산 도사 여기에 곽경택 감독까지. 세 남자가 그리는 잔잔한 인간미는 ‘극비수사’란 제목과는 묘한 대조를 이룬 채 달린다. 직접 극 속에서 공길용으로 살아온 김윤석 역시 인간미란 단어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실제 공 선생님도 33일간의 수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범인을 못 잡은 게 아니라고 하셨죠.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피해 아동 엄마 얼굴 보는 게 제일 괴로우셨대요.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졌죠. 생각해보세요. 안그럴까요. 아휴. 점점 피골이 상접해 가는 엄마가 ‘당신 밖에 없다’는 눈빛으로 애원을 하는 데. 공길용도 극중 부모잖아요. 그런데 몸과 마음이 굳어 있으면 그게 사람인가요.”

그는 영화 속 몇 장면을 언급했다. 실제 두 아이를 키우는 부모인 김윤석은 극중 피해 아동의 엄마 심정을 묻는 질문에는 유독 힘들어 하는 모습이었다. 강렬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였지만 그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였고, 비록 가상의 세계였지만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영화 속에서 서울의 수사팀이 꾸려지고, 공길용이 ‘내가 빠지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때 엄마가 ‘우리 은주 좀 데려다 주이소’라고 외치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아마도 공길용이 직업적 형사에서 한 인간으로 변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너의 애들이 유괴되고도 이따위로 할거냐’ ‘너흰 애 엄마 얼굴도 안봤냐’라고 소리칠 때 정말 화도 났고. 부모들만 알 수 있는, 아니 사람이라면 느껴야 하는 감정이잖아요.”

김윤석의 말을 계속 듣고 있다 보니 실제 공길용 형사는 할리우드 마블스튜디오의 영화에서나 나올 듯한 히어로의 느낌이 강했다. 관료주의와 성과주의가 점차 지배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자신의 공을 포기하면서까지 소신을 지키려는 인물들이 대체 몇이나 될까. 정말 공길용 형사가 실제로 영화 속 공길용처럼 소신 하나 만으로 33일간을 사건 하나에 매달려 있었을까.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실제 사건과 거의 유사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디테일한 부분은 영화적 창작이 들어갔죠. 하지만 공 선생님이나 김 선생님 두 분의 에피소드는 곽 감독님이 아주 세밀하게 취재를 해서 시나리오를 녹여내셨어요. 특히 수사 방식은 거의 사진처럼 똑같다고 보시면 되요. 경비원 옷을 입은 점, 자전거로 들이 받아 차를 세운 점, 범인하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과 내용 등은 거의 똑같죠. 영화 처음에 업어치기 하는 장면도 맞고요(웃음). 유도 유단자라고 하시더라구요. 말단으로 시작해 총경으로 퇴직하셨죠. 당시 부산 조폭들한테는 저승사자로 불리셨대요.”

김윤석은 이번 ‘극비수사’에서도 그렇지만 전작 ‘쎄시봉’ 이후부터 확연하게 부드러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추격자’와 ‘황해’ 그리고 ‘타짜’로 그는 충무로 최고 카리스마 혹은 강렬한 이미지를 얻었다. 우습게도 그의 이런 이미지가 ‘무섭다’는 선입견까지 가져오게 됐다. 김윤석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우리 집에선 내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보시면 놀랄 겁니다. 하하하. 사실 좀 화도 나요. ‘완득이’ 같은 엉뚱하게 평범한 인물도 연기했고, ‘즐거운 인생’에선 기타치는 딴따라 아빠 역할도 했고. 내가 뭐가 무서워, 에이. 매스컴이 날 그렇게 만들어 버렸어요. 지금도 케이블 채널만 틀면 ‘추격자’ ‘황해’ ‘타짜’를 해줘요. 한 몇 천 번은 튼 거 같아요. 김윤석은 항상 ‘아귀’(타짜)고 ‘면정학’(황해)이고 ‘엄중호’(추격자)야? 에이. 지금 정리합니다. 나 부드럽고 재미있는 남자에요. 진짜로(웃음)”

‘극비수사’를 끝낸 김윤석은 영화 ‘전우치’에서 함께했던 배우 강동원, 그리고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의 주역 박소담과 함께 찍은 ‘검은 사제들’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검은 사제들’에 대해 “국내에선 아마 듣도 보도 못했던 새로운 얘기가 펼쳐질 것이다”고 자신했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그 자신감을 믿는다. ‘극비수사’ 속 은주 엄마도 그렇게 김윤석을 믿었다. 그리고 해피엔딩을 맞았다. 이제 다시 새로운 영화에 김윤석이 나온단다. 그럼 믿어야 하는 것 아닌가.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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