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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규 감독, ‘장수상회’로 버린 것 그리고 얻은 것

[인터뷰] 강제규 감독, ‘장수상회’로 버린 것 그리고 얻은 것

등록 2015.04.21 00:07

김재범

  기자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영화 ‘마이웨이’의 기록적인 실패는 사실 강제규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는 듯했다. 한국 영화 제작 시스템에 ‘블록버스터’란 개념을 처음 도입한 그는 승승장구의 행보를 보여 왔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데뷔작 ‘은행나무 침대’부터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는 국내 영화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도 빠져서도 안 되는 작품들이다. 국내 영상 창작물 가운데 ‘환생’을 소재로 한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었다. 판타지 로맨스의 시초라고 봐도 무방하다. ‘쉬리’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초로, 지금의 강제규 감독을 만든 작품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최초의 1000만 영화 ‘실미도’를 넘어선 또 다른 1000만 영화이자 한국 전쟁 영화사에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강제규는 이런 영광을 뒤로 하고 ‘마이웨이’로 급전직하했다. 그리고 몇 년 뒤 단편 ‘민우씨 오는날’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스스로 깼다. 뒤 이은 ‘장수상회’는 어쩌면 ‘민우씨 오는날’의 연장선에서 바라봐야 할 강제규의 변신이다.

대부분의 시선은 강제규 감독에게 ‘장수상회’가 도전이란 것이다. ‘도전’은 평소 도달해 보지 못한 목표에 오른 힘겨운 과정을 뜻한다. 수십억에서 수백억대의 대작을 만들어 온 강 감독에게 체감상 독립영화 수준의 제작비가 투입된 ‘장수상회’가 도전이란 말은 어불성설 같았다.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아마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 같아요. 내가 지금까지 해온 스타일의 영화가 아니기에 그런 말씀들을 해주시는 것 같아요. 강제규라고 하면 좀 크고 남성적인 느낌을 원하는 것 같아요. ‘쉬리’ ‘태극기~’ ‘마이웨이’ 모두 좀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장수상회’ 좀 다르게 다가 오시는 것 같고(웃음). 특히 제게 도전이란 말을 하시는 분들 가운데는 이 영화가 제가 연출한 작품 가운데 처음으로 남이 쓴 글이에요. 그런 의미라면 저도 ‘도전’이란 말은 동의를 합니다. 하하하.”

강 감독은 데뷔부터 최근까지 자신이 쓴 글로만 연출을 해왔다. 대부분의 감독들이 시나리오와 연출을 겸업하는 스타일이지만 강 감독은 유독 글에 대한 욕심이 강한 축에 속하는 영화감독이다. 작가로서의 자부심도, 감독으로서의 자부심 모두 팬들이 느끼는 감정 그대로였다. 그런데 남이 쓴 글로, 그것도 자신이 한 번도 손을 대보지 않은 노년의 로맨스라니.

“제의를 받았죠. 글을 읽어보니 워낙 훌륭해서 손을 댈 곳이 없을 정도였어요. 물론 원작 자체의 훌륭함도 있었죠. 이런 시나리오로 연출하면 내가 ‘고생은 덜 하겠다’란 생각도 좀 있었고(웃음). 사실 지금까지 내 글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글을 연출 안한 이유는 불편함이었죠. 내 옷이 아닌 것 같은. 욕구도 잘 안 생겼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어요. 뭐 낳은 정도 있듯이 기른 정으로 만들어 보잔 생각을 했죠.”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사실 ‘장수상회’ 속 성칠(박근형)과 금님(윤여정)을 통해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봤는지도 모르겠다. 제목인 ‘장수상회’는 강 감독의 아버지가 직접 운영했던 가게 ‘영남상회’와 맞닿아 있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 얘기를 잠시 전했다.

“어머니가 췌장암으로 3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는 현재 치매로 고생 중이신데, 참 안타깝죠. 이 시나리오를 통해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났던 것도 사실이고요. 내 생각을 잠시 관객 분들이 느낀다면 어떨까 생각도 했죠. 시사회날 아버지가 누님들 손을 잡고 오셔서 보셨는데 상영 내내 집중하셔서 보셨는지는 모르겠어요. 누님 말로는 슬픈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신 것 같다고도 하시고. 기억을 잘 못하시니깐 그게 참 가슴 아프죠.”

강제규 감독의 그런 마음은 ‘장수상회’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묻어나 있었다. 카메라의 시선과 워킹 자체가 가족에 대한 따뜻함으로 이어졌다. ‘장수상회’가 주 무대인 동네는 흡사 강제규가 만들어 낸 판타지 속 동화 마을 같았다. 강 감독 스스로가 그랬을지도 모른다. 또 영화를 보는 관객 개개인도 그랬을지 모른다. 내가 바라보지 못했던 늙은 부모님의 지나온 시간이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란 점을.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부모님 세대의 잃어버린 로맨스를 살리는 것도 중점이었지만 사실은 내 얘기가 됐을 수도 있었죠. 나의 70대는 어떤 삶일까. 이런 상상을 해봤어요. 좌절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힘들고 고달프고 외로운 점도 있겠죠. 이 영화를 통해서 그런 감정들을 조금 판타지스럽게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꼭 젊은 시절의 사랑만 예뻐야한단 법 없잖아요. 그리고 찍으면서 나조차도 힐링이 됐죠. 하하하.”

그런 과정을 통해 영화 속에서 살아나야 할 ‘성칠’과 ‘금님’을 연기한 배우 박근형과 윤여정에 대한 생각도 궁금했다. 사실 두 배우 모두 노년의 로맨스를 그리기엔 이미지적으로 상충되는 점도 분명 있었다. 박근형은 드라마 ‘추적자’에서 악랄한 악역으로 등장했고, 윤여정은 깐깐한 시어머니 이미지가 컸다.

“로맨스가 이 영화의 기본이고 누가 어울릴까를 생각했죠. 두 분의 이미지를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하지만 전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반대로 두 분이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먼저 두 분이 이 인물들을 잘 연기할까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연기에 대해서 두 분에게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잖아요(웃음). 단지 두 분이 갖고 있는 이미지로 반대의 모습을 만들어 냈을 때의 쾌감이 클 것이라 생각했죠. 그 쾌감을 생각하며 만들었는데 제 예상은 비슷하게 나갔어요. 관객 분들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강제규 감독은 인터뷰 동안 ‘공감’과 ‘소통’이란 단어를 많이 썼다. ‘장수상회’를 보면 얼핏 이해가 가는 두 단어였다. 세대를 초월한 감정인 ‘사랑’ 그리고 세대를 넘어서는 감정의 교류가 담겨 있었다. 그의 바람이 분명히 담겼고, 관객들에게도 전달될 것 같았다.

“‘장수상회’는 모든 세대가 공감하고 느끼고 웃고 울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세상살이 참 힘들잖아요. 그래도 가족이 있기에 살만한 세상이란 점을 조금이라도 전해 드리고 싶었죠. 그 어떤 선입견도 없이 감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이 영화를 통해 얻어가시는 선물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인터뷰 말미에 강제규 감독과 연계된 영화팬들의 오랜 궁금증 두 가지를 물었다. 하나는 강 감독의 숙원과도 같은 SF 아이템 ‘요나’다. 2006년 이 얘기를 갖고 할리우드를 두드렸다.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중단된 프로젝트다. 그리고 ‘장수상회’ 이후의 신작 계획이다.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요나’는 내가 영화를 시작하면서 만들지 못한 유일한 얘기에요. 아직도 손에서 놓지는 못하고 있어요. 고민은 하고 있죠. 그 아이템이 갖고 있는 신선도가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가. 또 그것이 지금의 시대에서 관객들에게 어떤 어필을 할 수 있을까 등등. ‘요나’는 내게 아직 ‘...’(점점점)입니다(웃음). 그리고 신작은 올 여름 쯤이면 시나리오가 정리될 듯해요. ‘마이웨이’ 끝나고 곧바로 쓴 작품인데 한 3년 정도 매달렸네요. 현재 7고째 각색을 하고 있는데 여름쯤 정리가 될 것 같습니다.”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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