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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도 바삐 뛴 대한상의···‘샌드박스’ 결실 봤다

코로나19에도 바삐 뛴 대한상의···‘샌드박스’ 결실 봤다

등록 2021.02.25 08:40

임정혁

  기자

‘입법 우회로’ ‘민간 샌드박스’가 만든 변화출범 후 200여일 동안 84건 과제 혜택 받아“혁신 기업 가능토록 법령 정비 이어가겠다”

박용만 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2월 2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열린 규제샌드박스 2주년 성과보고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사진=이수길 기자 leo2004@newsway.co.kr박용만 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2월 2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열린 규제샌드박스 2주년 성과보고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사진=이수길 기자 leo2004@newsway.co.kr

대한상공회의소가 설립한 샌드박스 지원센터가 코로나19로 기업의 경영환경이 위축되는 상황에서도 본래 취지의 효과를 거두고 있어 재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출범한 대한상의 샌드박스 지원센터는 기업들이 샌드박스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접수부터 승인까지 원스톱으로 도와주고 있다. 샌드박스란 아이들이 마음껏 뛰노는 모래 놀이터(sandbox)처럼 기업들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규제를 유예 또는 면제해주는 제도다.

영국과 일본 등 해외 국가들도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해 운영 중이지만 대한상의처럼 샌드박스를 민간이 지원하는 경우는 한국이 세계 최초다.

대한상의 통계 역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날 대한상의에 따르면 출범 이후 약 200여일 동안 84건의 과제가 샌드박스를 통해 빛을 보게 됐다. 수십 년째 시범사업만 하던 비대면 진료의 물꼬를 튼 재외국민 비대면 진료를 시작으로 공유미용실, 공유주방, 도심순찰 드론 등 낡은 법제도에 가로막혔던 신사업들이 가능해졌다. 이런 혁신이 가능해지기까지 결코 쉽지 않았다. 세종과 서울을 오가는 치열한 논의와 약 2만 여장에 달하는 신청 서류 작성이 그 근거다.

“단순히 스타트업 하나가 성공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대한민국 경제계를 떠받들 새로운 굵은 나무들이 자라는 토양을 만드는 거죠. 그것도 빨리.”

박용만 전 회장의 말처럼 샌드박스의 취지는 새롭고 혁신적인 사례가 시장에 나오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오는 데 있다. 실제로 샌드박스 승인을 계기로 그동안 막혀 있었던 새로운 시도들의 물꼬가 터지게 되는 이른바 ‘샌드박스 Effect’가 나타나고 있다.

공유주방과 공유미용실이 대표적이다. 공유주방은 주방 하나를 여러 사업자가 공유함으로써 창업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는 혁신 서비스지만 국내에선 불법이었다. 식품위생법상 교차오염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공유주방 스타트업 위쿡의 김기웅 대표가 지난해 5월 상의를 직접 찾아 박 회장에게 직접 애로를 호소한 계기다. 이에 박 회장과 상의가 직접 나섰고 결과는 샌드박스 ‘승인’. 위쿡을 포함해 샌드박스 승인을 받은 기업들을 통해 205개 매장에서 푸드메이커 1300명이 ‘나만의 매장’을 갖게 돼 ‘제 2의 백종원 되기’에 도전할 예정이다.

실제로 식약처가 지난해 9월 1년 반 간의 테스트 경과를 점검해보니 음식점 창업에 필요한 초기 투자비용 약 126억원이 절감됐다. 김 대표는 “(샌드박스 승인을 통해) 공유주방을 넘어 식음료업(F&B) 스타트업을 키우는 ‘유니콘 엑셀러레이터’가 되겠다”며 감사를 밝혔다.

공유미용실도 마찬가지다. 미용업도 주방의 경우처럼 현행법상 한 공간에 여러 명의 사업자 등록이 불가능한 데다가 샴푸실 등 공용시설을 사용하는 것도 불법이다. 하지만 대한상의 샌드박스 지원센터를 통해 실증특례 승인을 받게 되면서 사업의 길이 열렸다.

높은 창업비용과 임대료로 미용실 5곳 중 1곳이 1년 내 폐업하는 현실 속에서 공유미용실은 ‘병아리 미용사’들을 위한 대안 역할을 할 전망이다. 실제로 샌드박스를 통해 81개 매장에 900명의 미용사들이 ‘나만의 미용실’에서 당당하게 ‘원장님’ 소리를 들을 예정이다. 국내 최초 공유미용실 샌드박스 승인기업 제로그라운드의 김영욱 대표도 샌드박스 승인을 받자 “확실히 투자 받았을 때의 기분과는 달랐다”며 “사업적으로 잘 된 것보다는 사회를 위해 나도 한몫했다는 기분에 뿌듯했다”고 밝혔다.

샌드박스 제도는 일종의 임시 면허다. 기업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 현행 법제도가 불합리하다 판단되지만 법제도를 바로 바꿀 수 없으니 임시로 테스트해보자는 것이다. 따라서 샌드박스 승인을 통해 사업을 개시한다 해도, 관련 법령 정비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사업이 중단될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법령 정비 전까지는 샌드박스를 신청한 업체 외에는 사업이 불가능하다. 결국 샌드박스의 최종 목적지가 ‘법령 개정’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미 작년부터 박 전 회장과 대한상의 실무진은 “젊은 친구들이 마음껏 일 벌일 수 있도록 기성세대가 만든 낡은 법제도를 바꿔 주시길 바란다”고 호소하며 수차례 국회와 부처의 문을 두드려 왔다.

박 전 회장이 국회를 찾은 횟수만 13번이다. 지난해에는 무더운 여름날 의원실 사이를 다니며 국회 안에서만 하루 최대 7km를 걷기도 했고 비 내리는 궂은 날씨를 뚫고 샌드박스 승인기업 청년 CEO들과 함께 각 상임위별 위원장과 간사를 찾아 조속한 법령정비를 부탁하기도 했다.

다행히 국회와 정부도 빠르게 응답했다. 지금까지 11개의 법률이 개정됐다. 소관 부처가 유권해석을 내리거나 시행령·시행규칙 등 하위법령을 바꾸는 ‘적극행정’도 17건이나 된다.

법제화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공유주방이다. 이미 샌드박스 테스트를 통해 창업비용 절감 등 그 효과성이 톡톡히 입증된 데다, 위생 가이드라인 등도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지난해 9월 김성주 의원이 발의한 식품위생법 개정안은 11월 보건복지위원회를 지나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발의부터 통과까지 채 3달이 걸리지 않았다. 이로써 약 1조원에 이르는 국내 공유주방 시장이 샌드박스 사업자뿐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활짝 열리게 됐다.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도 대표적 사례다. 기존에는 전기차 폐배터리가 발생하면 지자체에 반납해야 하고 재활용을 위한 별도의 수거센터도 없어 민간 차원의 재활용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한국자동차순환협회에 따르면 폐배터리는 연간 100개 정도 발생되는 수준이지만 전기차 수가 늘면 5년 후엔 1만 개씩, 10년 후엔 10만 개씩 쌓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대로 두면 자원 낭비는 물론 환경 오염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박 전 회장과 대한상의 실무진이 국회를 찾아 조속입법의 필요성을 호소했고 지난해 12월 전기차 폐배터리의 지자체 반납 의무를 폐지하는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안과 거점마다 전기차 폐배터리 수거센터를 설립하는 전자제품등자원순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박 전 회장이 국회를 찾은 지 한 달 만의 일이었다.

관련법이 통과되면서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은 성장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김창인 에스아이셀 대표는 “일석삼조 법안이 통과됐다”며 “2050년 6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폐배터리 시장 산업화는 물론 환경 보호와 배터리 원료 수입 절감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스타트업 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 LG화학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추진하는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도 더욱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실제로 현대자동차가 최근 한화큐셀, SK이노베이션 등과 협력하겠다고 밝히는 등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적극적인 터라, ‘시너지’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에도 ‘택배알바 안심보험’ 같은 생활밀착형 ‘미니보험’을 적은 자본으로도 할 수 있도록 해 준 보험업법 개정안, 공인인증서의 독점적 지위를 폐지해 생체인증, 블록체인 등 민간 에게도 길을 열어준 전자서명법 개정안, 가명정보 개념을 도입해 미래산업 원유인 데이터 활용을 촉진하는 ‘데이터 3법’ 등도 박 회장과 대한상의의 노력 덕분이었다.

여전히 진행중인 과제들도 있다. 가사근로자법 제정이 대표적이다. 현행법상 이용자와 가사도우미 간의 계약은 사인(私人) 간 계약에 해당돼 가사도우미는 최저임금, 연차휴가 등을 보장받지 못한다.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가사도우미를 직접 고용하려는 스타트업 홈스토리생활의 사업모델도 불법이다.

다행히 지난해 11월 정보통신기술 샌드박스 승인을 받아 간신히 사업을 시작했지만 관련법 논의는 감감무소식이다. 이용자와 가사근로자들과 업체까지 법안에 찬성하고 있는 데도 말이다. 심지어 가사근로자법은 지난 18대 국회부터 매 국회마다 꾸준히 발의된 법안임에도 국회 무관심 속에서 여전히 ‘발의만 10년째’인 상태다.

아직 발의조차 되지 못한 경우도 있다. 재외국민을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의료해외진출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쟁점이 많아 수십 년째 시범사업만 진행 중인 내국인 비대면 진료와 달리,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해외 거주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단계적 해결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는 법안이다. 이 외에도 코로나 상황 하에 임시로 허용된 의약품 배송 서비스를 법제화하는 약사법 개정안, 자율주행 로봇의 통행범위를 보도로 확대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 등도 아직 발의되지 않은 상태다.

대한상의의 노력은 계속될 전망이다. 대한상의는 잠재력 있는 혁신 기업들이 시장에 나올 수 있도록 샌드박스 승인 지원을 지속하는 한편 신속한 법령 정비가 되도록 법제도 혁신을 이어나갈 방침이다.

특히 지금까지는 개별 기업의 샌드박스 승인 지원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후속 법령정비에 더 힘쓸 예정이다. 지난해 6월 1호 과제 ‘재외국민 비대면 진료’ 승인 이후 테스트 기간이 경과됨에 따라 후속 법령정비가 필요한 과제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한상의는 안전성이 검증되고 산업 파급력이 높은 과제들을 추려서 법령개정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뉴스웨이 임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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