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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백현 기자
등록 :
2020-10-06 17:22

[정백현의 직언]엄중한 이 시국에 굳이 채용비리 문제를

13일 정무위 국감서 은행권 채용비리 사건 재논의
사법부 결론 내린 사안에 입법부 재개입하면 월권
철 지난 현안보다 사모펀드 등 당면 현안 신경써야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 사진=이수길 기자 leo2004@newsway.co.kr

‘일사부재리의 원칙’이란 것이 있다. 사전적으로는 한 가지 사건에 대해 두 번 재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의 사법 환경에 적용한다면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내려진 사건에 대해서는 다시 다루지 않는다는 사법부의 기본 원칙이다.

매우 어려운 법률해설서에나 나오는 고급용어 같지만 사실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용어다. 쉽게 말하자면 상식퀴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정작 입법 권한을 쥔 국회의원들은 이 원칙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 무시하는 것인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오는 7일부터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시작된다. 이중 오는 13일로 예정된 국회 정무위원회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는 시중은행 부행장과 금감원 실장이 증인으로 출석해야 할 상황이 됐다. 의원들이 이들을 부른 이유는 은행권 채용비리에 대한 내용을 되묻기 위해서다.

채용비리 당시 부정 합격자 처리 방안과 부정 합격자들로 인한 피해자들의 구제 방안을 묻기 위해 증인을 불렀다는 설명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은행에 맡겨도 될 만한 일을 굳이 국회까지 고위관계자들을 불러 추궁할 만한 가에 대해서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우리은행 채용비리 문제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끝난 상황이다. 이 사건으로 이광구 전 은행장은 불합격권의 지원자들을 부정 합격시킨 혐의가 적용돼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고 2심에서는 징역 8개월로 감형됐고 지난 3월 대법원 판결까지 확정됐다.

신한은행 채용비리 문제는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난 2월 1심 선고에서는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고 나머지 관련자들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으며 일부 관련자는 무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은행권 안팎에서는 이미 해당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심판이 끝났고 책임자 처벌까지 이뤄진 마당에서 입법부가 굳이 같은 사건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은 억지가 아니냐는 지적을 하고 있다.

특히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끝난 사안을 국회가 다시 언급하는 것은 사법부 판단에 대한 지나친 입법부의 개입이자 일사부재리 원칙 위배 행위로 볼 수 있다. 또 2심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을 국회에서 다룬다면 향후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안팎의 지적과 우려에도 굳이 시중은행의 고위 임원과 금융당국 관계자를 부르는 것에는 검은 속셈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경제인에 대한 망신주기와 이슈성 현안 공략으로 의원 본인의 인지도를 높이려는 속셈이 아니라면 굳이 이 증인들을 부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은행권 채용비리 사건은 대중의 관심이 높은 사안, 특히 청년층의 분노를 살 현안이다. 은행도 잘못한 것이 있고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감독당국의 잘못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시점이 틀렸다. 국회가 나서서 따질 시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채용비리 문제를 다시 캔다고 똑같은 사건의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은행들 스스로에게도 난감한 사안을 되묻는 것은 과도한 망신주기나 다름없다.

이미 모두 끝난 일을 굳이 목소리 높이며 다시 따진다고 해서 그 국회의원이 영웅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엉뚱한 판단으로 시장 관계자들의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 그 생각은 왜 못하는 것일까.

21대 국회 개원 이후 처음 열리는 올해 국정감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다. 아울러 금융 관련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는 국감에서 다뤄야 할 사안이 많다. 그러나 채용비리 문제를 굳이 되짚는 오류는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과거부터 꾸준히 지적됐던 일을 반복한다면 그만큼 우매한 일도 없다. 경제인에 대한 공개적 망신주기, 법률 원칙의 무시와 관심 끌기용 호통은 이제 국회에서 사라지길 바란다. 국민은 그러라고 의원들을 뽑아준 것이 아니다.

정백현 기자 andrew.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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