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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철 기자
등록 :
2020-09-17 07:01

수정 :
2020-09-17 14:25

정치권·당국 개입 없으니…금융권에 부는 ‘CEO 연임’ 바람

정부 직간접 개입 사라지고 금융사 자율성 보장
금융회사에 힘 실어주니 줄줄이 연임 CEO 등장
능력·경륜 갖춘 CEO 연임에 조직 스스로 안정화
임기 막바지 허인·진옥동 등도 연임 가능성 높아

사진 왼쪽부터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사진=뉴스웨이 DB

매년 주요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선임을 앞두고 금융권을 시끄럽게 했던 ‘관치(官治)금융 논란’이 사라졌다. 금융권 CEO 선임 과정에서 금융당국이 직간접적 개입 의사를 내비쳤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의도적인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금융지주를 제외하고는 정부의 지분이 단 1주도 들어가지 않은 만큼 민간 금융회사의 인사에 개입하지 않고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금융권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

금융권 CEO 인사의 권한을 금융회사 이사진과 주주들에게 일임하자 금융회사들은 CEO의 무리한 교체보다는 연임을 통한 안정적 변화로 인사의 흐름을 확고히 했다.

무엇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 장기화로 어려워진 경제 사정을 고려할 때 금융권의 전폭적인 도움이 필요한 만큼 정부가 민간 금융회사의 자율성을 확실히 지켜줌으로써 윈윈의 명분을 찾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금융회사는 자체적으로 능력과 경륜을 갖춘 CEO를 뽑을 수 있게 됐고 정부는 시장을 잘 아는 CEO와 함께 위기의 시장을 보호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제 금융권의 관심은 이 인사 흐름이 향후 발생할 정부 교체 과정 이후에도 계속 될 수 있을 것인가로 흘러가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0일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의 연임이 결정된 데 이어 16일에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도 3연임이 확정됐다. 앞서 올해 초에는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연임에 성공한 바 있다.

그동안 금융권에선 CEO 교체는 빈번했다. 연임은 고사하고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채 교체되는 경우도 잦았다. 특히 과거 정부 집권기에는 정부가 금융권 인사에 개입하는 경향이 컸다. 박근혜 정권 시절 ‘서금회’와 이명박 정권 시절 ‘4대천왕’이 대표적인 사례다.

서금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출신 금융인들의 모임으로 이곳 출신 인사들은 당시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로 잇따라 낙점되면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을 받았다.

서금회는 정권 중반기에 들어서자 본격적인 행보를 펼치면서 비난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일부 은행과 증권회사에서는 CEO 인선 과정에서 기존 유력 인사 대신 서강대 출신 인사가 CEO에 오르는 일이 벌어지면서 서금회 인맥 논란이 일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 시절의 금융계는 ‘MB 인맥’에 고스란히 장악됐다. MB 인맥은 민간 금융지주회사 회장, 금융공공기관장, 금융사 사외이사까지 금융계 전반을 지배하는 자기완결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특히 금융지주 회장들은 모두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 포진됐다.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전 회장,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 등 당시 금융지주 빅4 중 라응찬 전 회장이 장악했던 신한금융지주 회장을 빼면 모두 고려대 출신이다. 김승유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의 같은 과 동기였고 어윤대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의 같은 과 후배였으며 법학과 출신인 이팔성 전 회장은 김승유 전 회장과의 인연 덕에 이 전 대통령과 가깝게 지냈다.

여기에 MB정부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이자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강만수 경제특보가 산은금융지주 회장으로 가세하면서 MB인맥이 4개 금융지주사를 모두 장악하게 됐고 이른바 ‘4대 천왕’ 시대가 열렸다. 이 시기 금융지주 회장들은 청와대에 종종 초청돼 이 전 대통령과 대화에 나서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관치 금융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은행권 CEO 선임 흐름은 이전과는 확 달라진 분위기다. 우선 정부가 민간 금융회사의 CEO 인선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과거 같았다면 유력 정치인이나 친정부 성향의 금융권 올드보이(OB) 인사들을 통해 ‘인사 줄 서기’ 현상이 일어났겠지만 이 현상이 최근에는 사라졌다.

실제로 올 초 손태승 회장의 연임 과정에서도 금융당국은 “이사회나 주주들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라며 의도적 거리두기 행보를 나타낸 전례가 있다.

일각에서는 최근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고려할 때 시장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현직 금융회사 CEO들의 도움을 얻기 위해 의도적 무관심으로 현직 CEO들의 연임을 조용히 도운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정부와 금융권 양측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된 셈이다. 실제로 최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5대 금융지주 회장들과 만나 코로나 위기 극복과 한국판 뉴딜 사업을 위한 지원을 호소했을 때 회장단도 이에 적극 공감하고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더 이상 금융당국이나 정치권으로부터 금융회사 CEO 인사 개연설이 나오지 않는 것이 업권 전체에 발전을 불러올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가 지배적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시대가 변했음에도 여전히 정부가 민간 금융권 인사에 개입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면 정부와 금융회사 모두에게 큰 상처가 될 것”이라며 “이제라도 금융회사들에게 인사 자율권을 보장한 것은 시장 전체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수장들의 연임에는 정부의 개입이 사라진 것도 영향이 있지만 현직 CEO들이 거둔 탄탄한 경영 성과도 큰 영향을 미쳤다. 윤종규 회장은 지난 6년 동안 꾸준히 순이익을 늘리는 등 뚜렷한 성과를 남겼고 이동걸 회장 역시 2017년 취임 후 산업은행의 오랜 구조조정 과제를 하나둘씩 해결했다.

금융권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여파로 경기 위축이 심화되고 있는 만큼 경영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연임 기류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11월 임기가 만료되는 허인 국민은행장이나 연말 임기가 끝나는 진옥동 신한은행장의 연임 가능성이 크다. 두 은행장 역시 각 은행의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 허 행장은 지난해 이미 한차례 1년 연임에 성공하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았고, 진 행장 역시 코로나19로 악화된 영업환경에서 안정적인 성과를 거뒀다. 지성규 하나은행장과 권광석 우리은행장도 연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금융권 관계자는 “인사는 끝까지 가봐야 알겠지만 현재 코로나19로 경제 상황이 워낙 안 좋아 변화를 가지기에는 리스크가 큰 시장”이라며 “이에 크게 과오가 없다면 대부분의 CEO가 연임에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주현철 기자 jhchul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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