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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말공부는 마음공부

[김성회 온고지신 리더십]리더의 말공부는 마음공부

등록 2020.01.15 10:28

김성회 CEO리더십 연구소장김성회 CEO리더십 연구소장

‘촌철살인(寸鐵殺人)’ 간단한 말로 남의 약점을 찌르거나, 감동시킨다는 한자성어다. 촌철은 손가락 한 개 폭 정도의 무기를 뜻한다. 살인은 무기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의 속된 생각을 없애 깨달음에 이름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이 무기를 한 수레 가득 싣고 왔다고 해서 살인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치가 안 되는 칼만 있어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칼보다 더 무서운 말의 위력을 담고 있다.

남송 때 학자 나대경(羅大經)이 집으로 찾아온 손님들과 함께 나눈 담소를 기록한 <학림옥로>가 그 출처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박준 시인의 시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겠지만’의 구절은 사람을 해치는 언어의 폭력성과 상처를 되새기게 한다. 입에서 태어나 귀에서 죽는 말, 죽지 않고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은 말···. 귀에서 죽으면 다행이지만 마음에서 살아남아 큰 못, 작은 못이 되어 오래도록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준다. 편견, 재단, 차별, 심판, 근거 없는 의심의 말···. 이 모두가 사람을 해치고, 상처주고, 심지어는 죽이는 말들이다.

말은 곧 생각이다. 죽이는 말은 생각이 되지 못한 채 미성숙한 감정의 배설이다. 감정배설의 욕구를 다스리는 절제는 자기관리의 최고습관이고 인물평가의 중요척도다. 공자가 조카사위를 고른 기준도 바로 말의 절제 습관을 본 것이었다.

“너는 하는 말을 삼가며, 네 위의(威儀)를 공경히 하여, 유순하고 아름답지 않음이 없게 하라. 보석(白圭)의 흠집은 오히려 갈아서 없앨 수 있거니와 말의 흠집은 그렇게 할 수가 없느니라(白圭之玷 尙可磨也 斯言之玷 不可爲也).”

《시경》 〈대아(大雅)〉 억편(抑篇)의 시다. 말을 조심하고 삼가라는 의미에서 자주 인용되고 회자되는 시다. 공자의 제자 중 남용이 이 시를 하루에도 여러 번씩 읊으며 언행을 다듬었다. 공자는 그 모습을 관찰하고선, 다른 것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장 조카사위로 삼았다. 그러면서 “나라에 도가 있을 때는 쓰일 것이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라도 형벌을 면할 것이다”라고 인물을 평가했다. 나라에 도가 있을 때는 바른 말로 등용될 것이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는 무모하게 들이받아 화를 자초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얼마 전 호프집에서 목격한 일이다. 옆 테이블이 시끌벅적 소란스러웠다. 직장인 4명이 한 팀을 이뤄 온 듯했다. 연장자가 부하직원으로 보이는 젊은이에게 “너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고 술 취한 소리로 외치며 어깨를 밀치고 있었다. 당사자는 물론 나머지 두 명도 “부장님, 고정 하세요”라고 말할 뿐, 같이 죄인의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사장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말을 부장이 이렇게 윽박지를 수 있는가 의문이 들었다. 내일 저 부장은 직원 얼굴을 어떻게 볼 것인가? 술자리에서 한 말이니 다 털어버리라고 할까, 아니면 그마저도 없이 넘길 것인가. 혹은 굴욕감, 모욕감을 잔뜩 안기고서는 ‘다 너희 잘되라고’ 했다며 ‘그렇게 힘들었으면 이야기하지’ 하고 어깨 툭툭 치며 마무리하려 할 것인가. 이럴 때 직원들은 허무하다 못해 허탈하다. 리더 놀이하지 말고 리더 노릇하라고 맞고함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말로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 말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같은 말을 해도 상황과 상대에 따라 받아들여지기도, 거부당하기도 한다. 늘 얼음 위를 걷듯 조심하고 삼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말에는 그 사람의 취향, 지향, 의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공자는 《논어》에서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말은 마음의 소리다. 말의 옳고 그름으로 인하여 사람의 바르고 그릇됨을 알 수 있다.” 맹자 역시 지언(知言)을 통해 지인(知人)하는 것을 자신의 차별성으로 내세웠다.

즉 리더의 말공부는 말을 넘어 마음공부다. 변론하거나 유세하기 위한 세속의 공부가 아니라 마음공부다. 말을 닦음으로써 마음을 닦는 것이다. 《소학》 등 유학 교육서들이 언어예절을 중요하게 다룬 것도 이 때문이다. 서양에서 ‘리더의 언어’가 주로 출세의 무기로 받아들여졌다면, 동양에서 ‘군자의 언어’는 마음공부의 수단으로 인식됐다. 서양에서 말을 날카롭게 다듬는 방법에 초점을 두었다면 동양에서는 말을 둥글게 다듬는 방법, 마음 다스리는 수양법에 방점을 두었다. 잘 말한다는 것은 유창성이 아니라 도덕성이었다. 서양은 원석을 갈아 보석을 만드는 연금술에 치중했다면, 동양은 보석의 흠집을 없애는 연마술을 중시했다.

따라서 어떤 말을 할 것인가의 구변보다 어떤 말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하는 말조심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 옛사람들은 군자가 조심해야 할 삼단(三端)으로 문사의 붓끝, 무사의 칼끝, 변사의 혀끝을 들었다. 속담에 ‘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재앙은 혀에서 나간다’고 했다. 또한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목을 베는 칼이다’라고도 했다. 모두 말을 경계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말로 흥하는 것보다 말로 망하지 않는 게 급선무였다. 좋은 말을 뜻하는 표현이 드문 데 비해 나쁜 말을 뜻하는 표현이 다양한 것도 그 때문이다.

상대방을 흠집 내고 헐뜯는 말을 일컬어 ‘독설’(毒舌)이라 한다. 욕설과 분노의 말은 상대방에게 독을 내뿜는 것과 같다. 말의 무게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같다. 모래알이든, 바윗돌이든 마음에 상처를 남기긴 매일반이다. 욕할 욕(辱), 헐뜯을 비(誹), 헐뜯을 방(謗)의 한자 어원을 보면 그것이 어떻게 사람을 상하게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욕할 욕(辱)은 손(寸)에 농기구(辰)를 들고 죽어라 일만 고되게 하는 모습이다. 즉 수고, 고통을 끼치는 일이다. 헐뜯을 비(誹)는 사실이 아닌(非) 말로 남을 비난하는 것이다. 헐뜯을 방(謗)은 곁에서, 혹은 가까운 사람(旁)이 말로 잘못을 나무라는 모습이다. 사실이 아닌 것을 가지고 가까운 사람이 하는 비난, 그것은 몸과 마음을 해친다. 가까운 곳의 비난이 더 서운한 법 아니던가.

비방, 부정적 언사의 해로움은 가슴에 칼을 꽂고, 뼈를 녹인다. 옛사람들은 큰 덕(德)을 쌓을 수 있는 행동중 하나로 “하고 싶은 말을 억누를 수 있는 것”을 꼽았다. 혹시 나도 모르게 던진 말이 상처가 되어 누구의 가슴에서 자라고 있지나 않은지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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