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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로부터 온 편지]이종덕 - 도전? 하면 된다!

  • 등록  :
  • 2017-11-09 16:25
  • 수정  :
  • 2017-11-09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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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창업자로부터 온 편지’는 한국 경제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대기업 창업자들부터 미래를 짊어진 스타트업 CEO까지를 고루 조망합니다. 이들의 삶과 철학이 현직 기업인은 물론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1933년 18살의 나이로 농촌에서는 꿈을 펼칠 수 없다는 생각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한 청년. 바로 세아그룹의 창업주인 해암(海巖) 이종덕 명예회장인데요. 비록 빈손이었지만 그에게는 한번 결심하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추진력과,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강인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식료품 상회를 열고 장사를 하던 청년 이종덕은 미나도금고상회에 취직하면서 기업인으로 거듭나는 계기를 만들게 됩니다. 근면과 성실로 일본인 사장의 눈에 들어 젊은 나이에 공장장이 된 것.

공장장으로 일하며 사업에 눈을 뜨게 된 이 회장. 광복 후 사장은 미나도금고상회를 이 회장에게 맡기고 일본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광복기의 혼란을 틈타 들끓던 모리배들에게 속아 모든 것을 잃고 말지요.

시작부터 쓴맛을 본 이 회장은 친형과 함께 ‘해동공업사’를 설립, 국내 최초로 해외에서 철강재를 들여다가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사업이 자리를 잡아갈 무렵 한국전쟁이라는 두 번째 시련이 찾아옵니다.

‘할 수 있다’는 강인한 의지를 가진 이 회장은 시련에 굴하지 않고 1954년 해덕철강상사를 세우는데요. 점차 치열해지던 철강재 수입상의 경쟁으로 고민하던 이 회장, 젊은 경제학도였던 이병준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정부의 정책이 산업으로 향하리라는 것을 내다본 이병준의 조언을 들은 이 회장, 철강재 판매에서 강관제조업으로 발을 넓히게 됩니다. 1960년 그렇게 세아그룹의 전신인 부산철관공업이 탄생합니다.

부산철관공업은 부산에서 가장 먼저 KS마크를 획득하며, 국내 최초 강관 수출을 이루게 됩니다. 그 후 이 회장과 부산철관공업은 국내외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며 승승장구합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국가 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는 초석기업으로의 도약이라는 과제가 있었는데요. 도약을 위해 기업과 직원, 고객 모두가 만족하고 발전하는 방법을 찾던 이 회장.

1969년 심사숙고 끝에 부산철관공업의 기업공개를 단행하고 상장합니다. 회사를 위해 헌신한 직원들을 위해 사원지주제도 국내에서 가장 먼저 도입하게 됩니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수익이 늘어나는 가운데에도 이 회장은 무리한 경영을 멀리하고 내실을 다지면서 핵심역량 키운다는 초심을 잃지 않았는데요.

이회장의 굳은 의지와 신념을 바탕으로 강관업계 선두주자 로 우뚝 선 부산철관공업. 1975년 사명을 부산파이프로 바꾼 뒤 수출에도 앞장서며 업계 최초로 ‘1억불 수출의 탑’, ‘금탑산업훈장’이라는 영예를 거머쥡니다.

이 회장은 부와 명예를 모두 얻은 뒤에도 생산 현장을 떠나지 않고 직원들과 함께했는데요. 난관이 닥칠 때마다 직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으며 극복해 나갔습니다.

이 회장이 직원들에게 언제나 해주던 말이 있습니다. 바로 “하면 된다”는 것.

공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직원들의 등을 두드려주며 건네던 이 회장의 그 한마디, 지금의 청년들에게도 응원이 되길 바랍니다.

“하면 된다.”

이석희 기자 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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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희 기자seok@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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