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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과일’ 무화과 고장 산파 ‘고재서 옹'

‘여왕의 과일’ 무화과 고장 산파 ‘고재서 옹'

등록 2017.09.14 14:40

노상래

  기자

삼호농협직원들과 묘목 확보 및 보급에 혼신의 노력 결실...진정한 영암 발전 견인 삼호읍 나불공원에서 15~17일 사흘 간 ‘2017 영암무화과축제’ 개최

지난해 팔순을 맞은 고재서(81세) 옹과 부인 임채순(81세) 여사. (뉴스웨이)지난해 팔순을 맞은 고재서(81세) 옹과 부인 임채순(81세) 여사. (뉴스웨이)

무화과 최대 주산지인 영암군 삼호읍 나불공원에서 15~17일 사흘 간 ‘2017 영암무화과축제’가 열린다. ‘꽃을 품은 무화과 맛과 멋!’주제로 열리는 이번 축제는 다채로운 공연 및 체험행사, 신선한 영암 무화과를 구매하고 풍부한 볼거리를 선사할 예정이다.

무화과는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으로 클레오파트라가 즐겨먹어 '여왕의 과일'로 불릴 만큼 피부미용에도 도움이 되고, 섬유질도 풍부해 변비나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단백질 분해효소인 피신이 풍부해 육류를 조리할 때 첨가하면 연육작용을 도와 부드럽게 조리할 수 있으며, 쨈과 양갱 등 무화과를 활용한 가공제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영암군 삼호읍이 웰빙시대 대표과일로 꼽히는 무화과 주산지로 자리 잡게 된 데는 당시 삼호농협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영암군 삼호읍의 효자과일 무화과(뉴스웨이)영암군 삼호읍의 효자과일 무화과(뉴스웨이)

특히 그중 당시 영농부장인 고재서(삼호읍. 81) 씨가 아니었다면 오는 15일부터 열리는 무화가 축제가 개최 되지도 못했을 것이며, 농민들의 삶의 질도 지금같지는 못했을 것이어서 그의 역할은 아주 크다 할 수 있다.

무화과 제배는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1973년 삼호농협 초대조합장으로 취임한 고 박부길 씨가 농촌소득증대를 위해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한 결과 무화과가 이 지역 기후와 토양이 성장하는데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알아내고, 본격육성을 위해 조합원 대상으로 ‘농촌소득증대를 위한 무화과’ 책자를 발행해 조합원들에게 교육을
시작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박 조합장이 사업을 시행조차 해보지 못하고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무화과 소득사업은 차질을 빚기도 했지만 이후 박영종 조합장과 직원들의 노력으로 결실이 맺어진다.

당시 영농부장을 맡았던 고재서 씨는 무화과 보급에 헌신해온 숨은 공로자이다. 고 씨는 무화과가 소득작묵으로의 가능성을 누구보다 먼저 알았다. 왜냐면 고 박부길 조합장과 함께 무화과 재배에 대해 연구하고 매일 마을마다 출장을 다니며 농업인들을 교육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잘 자라는 무화과 묘목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박 조합장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하지만 무화가가 농가소득증대에 도움이 될 것이란 확신을 가진 고 씨는 묘목을 찾아 나섰다. 그 때는 교통편이 없어 자전거를 타고 삼호지역 곳곳을 누볐다.

박 조합장이 사망한 이듬해인 1974년에 조합 임직원들을 총동원해 수소문한 결과 삼호 난전리 박천수 씨 등으로 부터 봉래시 묘목을 구입하게 된 것이 무화과의 본고장으로 자리 잡는 시초가 됐다.

하지만 밭과 논농사, 어업에만 종사해온 삼호사람들에게 과실재배는 모험이었다. 그래서 보급에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고 씨는 이후 농가보급을 위해 현 삼호농협청사에 삽목한 이후 반상회등과 이장단 회의 등에 참석 무화과 나무 식재를 장려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동분서주 한 결과 200여 농가가 참여하는 성과를 거뒀다. 본인도 7백여 평의 밭에 100주를 심으며 솔선수범했다. 보다 많은 보급을 위해 각 농가에 3년 간 묘목을 무상으로 공급해 주었다.

고 씨는 특히 무화과를 보급한 이듬해인 1975년부터 수확이 가능함에 따라 판로확보에도 팔을 걷어부친다. 각 농가에서 수확한 무화과를 농협차량으로 삼호일대를 순회 수집해 광주에 내다 팔았다.

당시 농협직원이었던 김광순 씨와 함께 삼호에서 용당으로 용당에서 도선을 이용해 목포를 거쳐 광주 공판장으로 이동해 판매하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영암으로 가면 가까웠지만 비포장도로여서 열매가 깨지기 쉬워 한 푼이라도 비싸게 받을 작정으로 먼 길을 택했다.

아침에 수확한 무화과를 광주까지 운송하면 밤10시가 됐다. 새벽4시에 경매를 마치면 오전 8시였다. 이 같은 생활을 가을 한철이었지만 2년여 동안 마치 의무처럼 해냈다.

고재서 씨는 “처음에는 공판장에서도 저것이 과일인지 뭣인지 몰라 생뚱맞게 쳐다보더니 나중엔 당도가 높고 맛도 좋아 2년째에는 서로 사겠다고 나서서 비교적 비싼 가격에 판매됐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고 씨의 무화과에 대한 애정은 그래서 남다르다. 봄에는 묘목 보급, 가을에는 판매를 하며 무화과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산파 역할을 해온 것이다.

이런 노력의 결실로 무화과 재배가 본격적으로 이뤄진지 몇 해 되지 않아 광주 목포 등에 무화과과 본격적으로 알려지면서 소득 작물로 인기를 모았다. 이로 인해 광주공판장 판매를 2년 만에 중지하고 각 가정마다 개별판매를 하게 됐다.

고재서 씨는 “조합임직원 모두가 헌신해 지금의 무화과 대표생산지역이 된것에 자긍심을 느낀다” 며 “매년 열리는 무화과 축제가 단순히 축제에 그치지 않고 세미나 등을 통해 무화과 육성농업의 발전방안과 무화과를 활용한 각종 식품개발, 판로확보 등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 매우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고 씨의 열정을 아는 이들은 “무화과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영암군 농업기술센터의 무화과 자료집을 보면 이 같은 자료는 전무한 실정이어서 보완이 필요하다” 고 지젓하며 “고 씨가 무화과를 영암의 대표 식품이 될 수 있도록 하는데 앞장서 온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진정으로 영암 발전에 앞장서는 숨은 공로자”라고 입을 모았다.

뉴스웨이 노상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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