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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키스칸의 유르타와 공급망 전략

[홍석진의 글로벌 경제]징키스칸의 유르타와 공급망 전략

등록 2017.05.15 10:17

수정 2019.01.30 09:32

美 노스텍사스 주립大 교수/경제학 박사

징키스칸의 유르타와 공급망 전략 기사의 사진

고전을 통해 현대 경영의 교훈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계속 되고 있는 가운데 12세기에 세계를 정복한 징키스칸에 대해 연구한 프랑스의 미래 학자인 자끄 아탈리의 연구 결과가 시선을 끈다.

그는 인류를 끊임없이 이동하며 다른 문화와 교류하여 혁신을 이끄는 타입과 이들이 생산한 지식만 사용하고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지 못하고 수용 만 하는 타입으로 구분하였는데 현대인의 대표적인 특징중의 하나인 유목성의 원류를 징기스칸에게서 찾았던 것이다.

현대 경영은 정보, 원자재, 반제품, 완제품, 그리고 돈 등의 흐름을 최초 생산자로부터 최종 소비자 그리고 그 반대 방향인 소비자부터 생산자에 이르기까지의 쌍방향으로 원활하게 흐르게 하는 공급망 관리를 위해 많은 전문가들이 각종 현대 문물을 이용하면서 글로벌 한 경영을 하고 있다. 현대의 문명이기가 전혀 없었음에도 12세기 징키스칸은 어떻게 아시아에서 서유럽까지 정복할 수 있었을까는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일부의 자료에서는 그 비밀을 알려주고 있다. 그의 부대는 20세기에서나 가능 한 속도인 매일 일정한 거리 (150 마일, 240km)를 이동하였다. 이는 모든 군사가 기병대였기 때문에 가능 했을 것이다. 약 1,000년 전에 이미 현대의 부대 진격 속도를 확보 했었던 것이다.

또한 진격하는 부대 전/후방으로는 매 20 마일 (약 40km)마다 전령을 배치하여 정보와 군수 물자의 원활한 흐름을 확보하였다. 한 필의 말로 20마일을 달릴 경우 말의 피로도를 생각하여 정보를 전달하는 전령들은 항상 두 필의 말로 정보를 전달하였는데 이는 신속성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 뿐 아니라 유르타(유목민의 전통 이동가옥)를 이용하여 신속하고 편리한 병사들의 거점을 갖추었다. 몽고의 세력이 서유럽에게까지 미치자 1246년 교황 이노센트 9세는 이태리 신부를 몽고로 보내 그들에게 개종을 권유하도록 명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 신부는 병사들의 숙소와 물류 거점으로 이용되는 유르타의 신속성에 감탄하여 기록에 남겼다.

프랑스 신부인 윌리암 루부룩은 1253년에 몽고군 대장의 지휘소로 이용되는 유르타에 압도되어 “자유롭게 움직이는 커다란 배”와 같다고 묘사하였다. 이 지휘소는 유르타를 마차 위에 싫어 22마리의 황소가 끌게 하여 24시간 움직이는 지휘소로 만들어 빠른 속도로 진격하는 부대와 사령관의 움직임을 함께 하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 “4개의 바퀴 위에 있는 나무로 만든 원형의 집은 천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들이 원하면 어디든 갈 수 있는 견고하고 기동성 있는 구조를 갖추었다.”라고 묘사하였다.

현대 경영의 공급망 관리는 물품의 흐름과 함께 정보와 돈의 원활한 흐름을 확보하기 위해 속도 (Velocity), 가시성 (Visibility), 낮은 가변성 (Variability)의 3Vs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약 1,000년 전인 12세기부터 14세기에 이미 징기스칸은 부대의 속도, 유르타를 이용한 지휘조의 현장 장악 (가시성), 전령을 이용한 신속한 명령의 전달 및 현장 상황 파악으로 부대의 낮은 가변성을 유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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