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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진의 글로벌 경제]교통의 발달과 함께 꽃 핀 ‘인상주의’

  • 등록  :
  • 2017-03-07 07:00
  • 수정  :
  • 2018-05-21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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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이후 전통적인 화풍이 서유럽을 풍미하고 있던 시기, 인간의 눈에 비친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 빛에 반사된 강물, 안개 낀 호수, 빛이 풍만한 숲길 등 다양한 색을 이용한 그림을 그리면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인상주의가 등장했다. 인상주의 이전 대부분의 그림들은 실내에서 왕실과 귀족들을 위한 초상화, 성경에 기초한 성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인물화를 위주로 그리는 것에 국한돼 있었다.

그러나 인상주의 화가들이 등장함으로 자연 풍경 뿐 아니라 19세기 초반부터 근대적인 도시로 형성되기 시작한 파리시내의 활기찬 모습(클로드 모네, 쌩드니 거리)과 파리지앵의 여가 생활(에드가 모네, 레 암바사되르의 콘서트), 근대화 시설물(알프레드 시슬리, 빌뇌브 라 가렌느의 다리) 등을 화폭에 담아냈다.

그들은 왕실과 귀족들을 위한 그림 보다는 일반 시민들의 눈을 통해 비춰지는 모습 그대로 그들의 생활이나 근대화돼 가는 사회적인 현상과 변화 과정에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많은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으나 전문가들에게는 철저히 소외당했다. 특히 나폴레옹 3세에 의해 설계되고 하우스만에 의해 구현된 근대화 된 파리의 모습은 훌륭한 소재가 됐다.

무엇이 인상주의 화가들을 태어나게 했을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왕실과 교회의 권위에서 탈피함으로 개인의 사유를 중요시한 17-8세기의 계몽주의 또는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사라진 구 체제 (Ancient Regime)라고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18-9세기의 산업혁명으로 인한 철도 교통의 발달이 인상주의 화가를 교외로 용이하게 나갈 수 있게 함으로 가능했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철도교통의 발전은 유럽 전역 대다수 화가들이 파리 시내에 모여 교류하며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또 다른 일부의 화가들이 파리 시내 쌩 라자르역을 통해 교외 (지베르니-모네, 퐁테블뢰-바르비종파, 오베르 쉬르 으와즈-폴 가쉐, 반 고흐, 르 아브르-유젠 부뎅 등)에 나가 자연 그대로의 경치뿐 아니라 크고 작은 사물까지 특히 근대화 시설물(철도, 철도 역사, 다리, 공장 등)을 표현해 일반 시민들도 함께 참여 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 미술을 즐기는 대상을 확대해 나가는데 기여했다.

철도 교통과 함께 그들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해 다양한 그림의 소재를 찾아 언제 어디에서나 대상을 화폭에 담을 수 있도록 한 것은 미술 도구인 이젤과 물감의 발달이다. 종전의 물감은 다양한 색의 물감을 갖고 이동하기가 불가능 했으나 이젤과 튜브의 발달로 다양한 색의 물감을 갖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됐다. 도비니의 경우 배를 이용해 수상 화실을 갖춰 파리 북쪽에서 센느 강과 합쳐지는 으와즈 강을 유람하며 자연을 화폭에 담았다. 철도 교통과 간편한 미술 도구들이 발전함으로 인상주의 화가들이 기존의 틀을 벗어나는 혁신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들은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화폭에 담을 대상이 실내에서 실외로 확대됨으로 해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 근대화 과정을 겪고 있는 도시의 발전된 모습과 현대적 시설물 등을 추가하고 사회적인 현상이나 변화까지 화폭에 담았던 것이다. 근대미술은 화가들의 창조성과 철도교통의 발달 그리고 화가들의 도구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해 준 유목 물품(이젤, 물감)이 결합해 일구어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미술의 근대화에 교통의 발달은 미술사에 가장 큰 전환점을 만들었고 신세계를 열어 준 계기가 된 것이다.


홍석진 美노스텍사스 주립大 교수.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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