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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 김혜수 그리고 ‘엄마’와의 대화

[인터뷰] ‘차이나타운’ 김혜수 그리고 ‘엄마’와의 대화

등록 2015.04.27 13:00

김재범

  기자

사진 = CGV아트하우스 제공사진 = CGV아트하우스 제공

‘섹시함’이란 단어 안에서 풀어보자면 김혜수를 따라갈 여배우가 있을까. 단순하게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는 섹시함이 아니기에 김혜수의 존재감은 특별하다. 그는 상대를 압도하는 존재감, 여기에 상대와의 호흡과 호흡 사이의 빈틈을 잡아내는 능숙함, 극 전체의 흐름에 스스로를 녹여내는 리드미컬함을 특유의 섹시함으로 풀어내는 방식을 알고 있다. ‘화자’의 개념으로 출연한 ‘타짜’와 출연 분량은 ‘극미’하지만 수컷 냄새가 물씬한 ‘관상’ 단 두 편만으로도 김혜수란 배우의 쓰임새와 존재감은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김혜수는 섹시하지만 단순한 섹시함이 아닌 ‘김혜수’란 이름 자체의 브랜드가 정립된 그런 배우다. 그리고 데뷔 29년 만에 김혜수란 이름의 브랜드에 정점을 찍을 역할을 만났다. 아니 현재까지는 이 영화 속 김혜수가 정점이다. 영화 ‘차이나타운’ 속 김혜수다. 더 이상의 김혜수를 만나고 싶지만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의 능력을 폄하하는 게 아니다.

너무도 강렬한 톤 앤 매너가 눈에 띄는 영화다. 김혜수의 강렬함이 묻힐 정도로 ‘차이나타운’은 강했다. 강함의 근원은 이 영화가 ‘생존’이란 진리에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은 살고 싶어 한다. 김혜수가 연기한 ‘엄마’도 무자비한 권력을 손에 쥐고 있지만 결론은 ‘살고 싶다’ 그 한 마디였을 것이다.

사진 = CGV아트하우스 제공사진 = CGV아트하우스 제공

“글쎄요(웃음). ‘엄마’가 어땠을지, ‘엄마’가 어떤 생각이었을지는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보셨지만 잘 아시겠어요?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4개월이나 고민했나 봐요. 왜 인지 모르겠지만 ‘잘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죠. 정말 좋은 작품이고, 배우로서 욕심도 나는 데 고민이 됐죠. 사실 이 정도면 전 포기하는 게 맞아요. 그런데 제작사 쪽에서도 제가 아니면 안된다고 하시고. 영화를 다 찍고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차이나타운’ 자체가 엄마란 걸. 참 어렵죠?(웃음)”

그는 ‘엄마’란 인물을 ‘거대한 벽’이라고 표현했다. ‘차이나타운’은 결국 사람에 대한 영화다. 생존에 대한 영화다. 살고 싶어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아귀처럼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치열한 얘기를 그린다. 그 정글 같은 법칙의 커뮤니티 안에서 김혜수는 꼭지점에 선 인물이다.

사진 = CGV아트하우스 제공사진 = CGV아트하우스 제공

“인간의 얘기인데, 과연 인간들이 맞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인간성이 상실된 모습들. 그 중에서도 엄마는 감정 자체가 없는 인간으로 비춰지죠. 사실 영화를 보고 났더니 ‘내가 젤 정상이네’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하하하. 엄마는 가족들에게 여러 이유를 들어 잔인한 짓을 명령하잖아요. 그게 살아가는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가족을 대하는 방식. 그렇기에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들에겐 엄마가 거대한 벽처럼 보였을 것 같아요.”

그런 ‘거대한 벽’과 같은 ‘차이나타운’ 속 ‘엄마’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한 모습이었다. 건강미 혹은 섹시미의 다른 말인 김혜수를 ‘이렇게까지 망가트리다니’란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다. 덕지덕지 기미가 낀 얼굴, 불룩하게 튀어나온 배와 펑퍼짐한 엉덩이 거칠게 이리저리 제멋대로 뻗은 머릿결은 성(性)을 가늠키 어려운 모습이다.

사진 = CGV아트하우스 제공사진 = CGV아트하우스 제공

“제가 처음 생각했던 엄마의 모습은 사실 지금보다 더 컸던 느낌이에요. 그게 아니라면 거의 뼈만 앙상한 듯한 날카로운 느낌? 그런데 후자로 가자니 살을 빼야 하는 데 제가 그걸 잘 못해요. 하하하. 뭐 다른 분들은 금방 10kg정도는 빼기도 하는 데 전 죽어라 뺀게 ‘타짜’때 였으니. 뭐 잘 찌는 체질도 아니라, 거의 이 몸매를 유지하고 사는데. 그럼 찌우지도 못하고 참 난감했죠. 그런데 분장팀에서 특수 분장을 제안했죠. 너무 감사했죠. 하하하. 좀 어색할 것 같았는데 그래도 생각 이상으로 자연스럽더라구요. 감독님과 저의 생각도 많이 일치했고, 그렇게 나온 모습이 영화 속 엄마에요.”

“죽음이 일상처럼 가까운 사람들이라면 생존을 위해 더욱 치열할 수 밖에 없어요. 오로지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 삶의 일부가 된 이들에게 일반적인 상식이 필요 없어요. 그저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고 그게 삶의 전부였던 사람일 뿐이에요.”

사진 = CGV아트하우스 제공사진 = CGV아트하우스 제공

영화를 보면 김혜수가 연기하는 ‘엄마’는 약간 뒤뚱거리는 팔자걸음이다. 다리가 좀 불편한 것 같기도 하고, 어떤 결투의 흔적으로 인한 후유증 같기도 하다. 풍성해진 하체와 거친 느낌의 피부톤 그리고 헤어가 결합돼 ‘엄마’는 진짜 차이나타운을 호령하는 인물처럼 다가왔다. 생명력을 얻게 된 것이다.

“모습이 결정되니 영화의 반이 거의 끝난 느낌이었죠. ‘엄마’는 죽음과 함께 사는 인물이잖아요. 그런 거친 세상에서 사는 데 건강이나 몸이 좋을 리 있겠어요. 온 몸이 성한데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죠. 보스의 중후함이나 카리스마 보단 언제 바닥에 주저 않을 지 모를 위태로움이 좀 있는, 고장 난 몸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무자비하고 비정한 인물이잖아요. 내적인 부분은 대사로 전달된다고 해도 외적인 부분이 정말 중요하다 생각했죠.”

사진 = CGV아트하우스 제공사진 = CGV아트하우스 제공

‘차이나타운’의 또 다른 묘미는 김혜수가 연기한 ‘엄마’와 그의 딸 ‘일영’이 선보인 이질감 넘치는 모녀 관계다. 이미 여러 기사를 통해 드러났지만 둘은 정상적인 개념의 모녀가 아니다. 유사 관계의 모녀 사이다. 단어 자체로만 묶여 있는 모녀다. 조직에서의 보스와 후계자의 개념이 더 적확할 듯하다. ‘엄마’는 초원 위 사자와도 같다. 그리고 새끼들을 공급 받는다. 벼랑 아래로 밀어 떨궈낸다. 그리고 제 힘으로 올라오는 ‘놈’만 거둬 키운다. 물론 키운다는 개념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그 모든 방식이 아마도 ‘엄마’의 삶 자체였을 것 같아요. 자신이 살아오면서 가족을 이뤘고 그 가족을 이끌어 온 방식이 그랬겠죠. 죽음을 곁에 두고 사는 사람으로서 보호가 아닌 스스로의 생존성을 가진 ‘가족’만 필요했을 것 같아요. 일영과의 첫 만남에서도 일영에게서 그 생존성을 본능적으로 봤겠죠. 일영의 반목이 필연적으로 드러나지만 그런 일영을 대하는 엄마의 방식을 보면 그 살아온 시간이 조금은 느껴지지 않으세요.”

사진 = CGV아트하우스 제공사진 = CGV아트하우스 제공

영화 속에서 일영은 ‘엄마’에게 “엄마도 엄마가 있었어”라고 묻는다. 그 장면에서 ‘엄마’도 얘기한다. “내가 죽였다”라고. 아마도 엄마는 자신의 결말을 알고 있었을 것 같다. 아니 직감으로 알아챈 게 맞다. 그리고 일영과의 결말도 말이다. 영화 속 그 모습이 엄마가 ‘차이나타운’ 그 자체임을 말하고 있었다.

“자신이 일영과도 같은 삶을 살아온 것이기에 자신의 결말도 분명히 알고 있었겠죠. ‘앞으로 모든 걸 네가 결정해야 한다’며 일영을 걱정하는 엄마의 모습. 아마 단 한 장면일 거에요. ‘엄마’가 진짜 ‘엄마’다운 장면. 그리고 그렇게 ‘차이나타운’은 또 다른 색깔의 ‘차이나타운’으로 살아가게 되고. 참 많은 생각과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 생각돼요.”

사진 = CGV아트하우스 제공사진 = CGV아트하우스 제공

그는 인터뷰 말미에 데뷔 이후 현장이 재밌다고 느낀 작품은 ‘타짜’ 이후 이번이 처음이었단다. 작품에 대한 애착도 강하고 배역에 대한 애정도 깊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줬다. 후배(김고은)에 대한 사랑도 넘쳤다. 좋은 작품이기에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바랐다. 하지만 대진운이 최악이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과 만난다.

“그런 거 걱정한다고 해결하면 100번 1000번이라도 걱정하죠. 그런다고 달라지나요(웃음). 전 제가 할 일은 다 했어요. 오랜만에 나온 여성 투톱 영화니깐 잘되야 한다는 말도 나오는데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이번 영화의 본질에만 접근해서 관객들이 선택해 주신다면 우리가 의도한 주제에 공감하는 많은 분들이 오셔서 보지 않을까요(웃음)”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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