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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를 갚아야 하나요”···채무자만 모르는 빚

[서민 목죄는 약탈금융①]“얼마를 갚아야 하나요”···채무자만 모르는 빚

등록 2015.04.15 14:35

김지성

  기자

연체채권 채무자 통보없이 대부업체에 매각지옥같은 추심 당하면 ‘도덕적 해이’란 말 못해

금융생태계는 소비자 권익 등에 둔감하다. 반대로 상대적 지위가 높은 금융사들에 관대하다. 최근에는 ‘SBI저축은행 3조원대 소멸시효 부실채권’ 문제가 불거지면서 불공정한 채권·채무 관계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상환 능력이 없음에도 무분별하게 돈을 빌려주고 그 책임을 채무자에게만 지게 하는 ‘약탈적 금융’이 판친다.

시중은행을 비롯해 대부업체까지 빚에 대한 금융권의 생각은 명료하다. 무조건 받아야 한다는 것. 도그마로 자리 잡은 이런 논리에 재기의 꿈은 사그라졌고, 서민 생계는 매우 위협받고 있다. 한 시민단체가 대부업체의 대출광고가 고금리 과잉대출을 조장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시중은행을 비롯해 대부업체까지 빚에 대한 금융권의 생각은 명료하다. 무조건 받아야 한다는 것. 도그마로 자리 잡은 이런 논리에 재기의 꿈은 사그라졌고, 서민 생계는 매우 위협받고 있다. 한 시민단체가 대부업체의 대출광고가 고금리 과잉대출을 조장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아등바등 버티던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당했습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재취업은 언감생심, 친구와 같이 차린 호프집은 불경기에 금방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은행 등 제1금융권이 막힌 상황에서 생활비와 영업비 등에 쓸 비용을 2금융권에서 빌린 게 제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트렸습니다. 지독한 추심 전화가 모르는 여러 곳에서 왜 오는지, 빚이 얼마인지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새 전 재산이던 3억원짜리 아파트는 경매로 넘어갔습니다.


평택의 한 중소기업 제조라인에서 일하는 A씨의 이야기다. 그도 과거에는 괜찮은 중견건설사 차장으로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러나 빚 독촉에 시달리다 지친 그는 가족과 생이별하고, 공장 근처 월세방을 전전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비단 이 이야기는 A씨 만의 일은 아니다. 주위에서 흔히 들어 봄 직한 이야기다. 이들은 왜 나락으로 떨어졌을까. 재기의 꿈조차 못 꾸는 금융구조 때문이 아닐까는 의구심이 든다.

아파트를 담보로 한 창업자금 대출을 폐업과 함께 날린 것은 A씨에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2금융권에서 빌린 20%대 고금리 5000여만원의 대출이다.

호프집 매출 부진에 빌리기 시작한 자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연체가 잦아졌고, 급기야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후 그를 따라다닌 건 가족을 피신시킬 정도로 혹독한 추심이다. 강압적인 전화 통화는 기본이고 딸의 학교 정문에서 소동을 피우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혹독한 추심이 A씨가 빌린 B캐피탈이 아닌 C대부업체였다는 점이다.

빚에 쫓겨 정황이 없던 A씨가 이 사실을 안 건 시간이 한 참 흐른 뒤였다. 그 이후로도 몇 차례 대부업체가 바뀌었고, 본인이 빌려서 갚아야 할 돈이 얼마인지 정확히 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에서도 채권이력제도(가칭) 도입을 추진하자고 하고 있지만, 당장에라도 대안을 내놓을 것 같던 금융당국은 여전히 검토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대부업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대부업 신용정보와 채권거래정보가 신용정보집중기구에 집중된 이후에야 이를 논의할 수 있다는 게 금융위원회의 판단이다.

채권이력제는 은행 등이 채권 양도 시 누구에게 양도했는지 등록, 신고하고 전산 시스템에 기록해 남겨두는 걸 말한다. 부실채권 규모와 유통과정을 투명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해결의 실마리는 은행과 금융회사에 있다고 지적한다. 강제 추심이 아닌, 적극적인 채무 조정을 통해 갚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자산건전성을 따져야 하는 은행들은 손쉬운 해결 방법으로 부실채권을 매각한다. 이를 받은 대부업체는 5% 정도의 헐값에 사들이고 빚 독촉으로 고수익을 얻는 구조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SBI저축은행 소멸시효 부실채권 매각처럼 은행들은 상당한 시간이 흘러 사실상 못 받을 돈이라고 결정하면 채권을 대부업체 등에 양도해 수익을 챙긴다”며 “대부업체로 넘어간 부실채권은 소멸시효가 지나도 지급명령 신청을 통해 채무기간을 늘리는 등 방법으로 끝없이 추심하고 이자에 이자를 낳아 삶을 망가뜨린다”고 지적했다.

김지성 기자 kjs@

뉴스웨이 김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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