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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뢰’, 뜨거운 가슴인가? 차가운 머리인가?

[무비게이션] ‘살인의뢰’, 뜨거운 가슴인가? 차가운 머리인가?

등록 2015.03.03 16:45

김재범

  기자

 ‘살인의뢰’, 뜨거운 가슴인가? 차가운 머리인가? 기사의 사진

해묵은 우리 사회의 숙제다. 인륜을 저버린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용서는 과연 어디까지 닿아야 할까. 아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말한 성경의 한 구절이 인간으로 포용할 수 있는 최대치의 용서일까. 영화 ‘살인의뢰’는 ‘절대악’으로 규정된 가해자를 두고 두 명의 피해자가 스스로의 가슴과 머리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괴리감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묵직함이 인상적이다.

영화 시작과 함께 ‘살인의뢰’는 둔탁한 둔기의 파열음으로 포문을 연다. 영화 속 살인 사건의 완전 공식인 둔기와 한 밤중, 그리고 빗속 주택가로 이뤄진 오프닝 시퀀스는 관객들에게 사고의 폭을 순간적으로 좁혀 버린다. 기존 스릴러 영화의 문법인 사건의 ‘발생-과정-해결’의 공식으로 흐를 것이란 사실을 짐작케 하기 때문이다. 이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누구인가.

 ‘살인의뢰’, 뜨거운 가슴인가? 차가운 머리인가? 기사의 사진

하지만 ‘살인의뢰’는 이 같은 공식을 완벽하게 거스른다. 사건 발생과 함께 범인의 얼굴이 고스란히 스크린에 비춰진다. 그리고 불과 10여 분 만에 범인 조강천(박성웅)은 형사 민태수(김상경)에게 붙잡힌다. 경찰들을 곤경에 빠트린 동남부 연쇄살인사건은 그렇게 막을 내린다. 하지만 그때부터 영화는 완벽하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앞서 언급한 공식이 완벽하게 역전되는 상황을 그리는 것이다. 범인이 공개된 상황에서 관객들에게 전해 줄 긴장감은 대체 뭘까. ‘스릴러’란 장르적 공식의 화법은 대체 어떤 식으로 흘러갈까.

기존 영화가 풀어낸 문법 안에서 형사는 언제나 제 3자였다. 공권력은 사건 속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든 유지하거나 마무리하는 방관자 혹은 관람자의 역할에 불과했다. 하지만 ‘살인의뢰’는 이 역할의 포커스를 변경시켰다. 사건을 유지하는 공권력이 만약 피해자가 된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살인마 조강천은 붙잡혔다. 사건은 끝이 났다. 하지만 남겨진 피해자들에게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유명무실’의 사형제도로 인해 사실상 무기징역으로 살고 있는 조강천을 두고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 과정이 2차 발생으로 그려진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가슴이 정답인가, 아니면 머리가 정답인가”를 말이다.

 ‘살인의뢰’, 뜨거운 가슴인가? 차가운 머리인가? 기사의 사진

동남부 연쇄살인사건의 마지막 희생자가 바로 태수의 동생 수경(윤승아)이었다. 수경의 남편 승현(김성균)은 하루아침에 인생이 뒤바뀌었다. 태수와 승현은 수경의 죽음을 뒤로 하고 어색한 식사를 하게 된다. 승현은 태수에게 가족으로서의 인연에 이별을 선언했다. 그리고 3년이란 시간이 흘렸다.

영화 초반 조강천이 검거되고 수경이 마지막 희생자로 밝혀진 뒤 혼란스러워하고 힘들어 하는 태수와 승현의 모습은 관객들에겐 익숙한 동요다. 강천은 감정의 동요가 없는 사이코패스다. 자신 앞에서 무릎까지 꿇으며 동생의 시신이 묻힌 곳을 알려달라는 태수를 비웃는다. 그에게 총까지 겨누며 화도 내고 때리기도 하지만 동료들은 말린다. 경찰이란 신분 때문이다. 자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나.

 ‘살인의뢰’, 뜨거운 가슴인가? 차가운 머리인가? 기사의 사진

그 선택의 해답이 바로 승현이다. 승현은 3년의 시간 뒤 태수와 기묘한 인연으로 엮이게 된다. 태수의 관할 지역 조직폭력배의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에 승현이 연관돼 있다는 증거가 나온다. 3년 동안 연락이 끊겼던 승현에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사건이 벌어질수록 이미 3년 전 사형판결을 받은 조강천을 향한 어떤 칼끝이 있음을 직감하게 되는 태수. 태수는 막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방관해야 하는 것일까.

장르적으로 스릴러는 관객들의 오감을 쥐어짜는 특유의 화법을 자랑한다. 하지만 ‘살인의뢰’는 정 반대로 흘러간다. 관객들의 머리와 가슴을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게 흔들어 놓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에 표를 던지겠나”라고.

 ‘살인의뢰’, 뜨거운 가슴인가? 차가운 머리인가? 기사의 사진

영화는 중간 중간 노골적인 대사로 ‘살인의뢰’의 주제를 관객들에게 강요하는 장면도 없진 않다. 하지만 그 부분이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데뷔 감독의 첫 시도로 보자면 무난한 선택으로 보일 정도다.

머리와 가슴의 싸움을 바라봐야 하는 관객들의 혼란은 결국 김상경 김상균 그리고 박성웅이란 폭발력 강한 배우들의 응집력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형사 전문’ 배우로 불리는 김상경은 ‘살인의 추억’에서 보여준 집요함, ‘몽타주’에서 선보인 인간미, 그리고 이번 ‘살인의뢰’에서 보여 준 인간적 괴리감으로 국내 형사 캐릭터로선 끝판을 선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연기를 소화해 냈다. 3년이란 시간차를 두고 선보인 마법 같은 체중 감량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탄성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살인의뢰’, 뜨거운 가슴인가? 차가운 머리인가? 기사의 사진

‘악역 전문’ 김성균이 데뷔 첫 피해자로서 감정의 응집을 선보인 부분도 눈길을 끈다. 특히 최근 셋째의 출산을 앞둔 아빠로서 이번 영화 속 ‘승현’이란 캐릭터가 남다르게 다가온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진짜는 바로 ‘박성웅’이다. 단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사이코패스를 살려낸 박성웅의 아우라는 경악스러울 정도다.”

‘살인의뢰’의 존재는 명확하다. 가슴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머리로 이해할 것인가. 그 어떤 부분이더라도 울림의 크기와 여운은 적지 않을 것이다. 개봉은 오는 12일.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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