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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자들’, 관객 농락하는 116분의 ‘케이퍼’ 작전

[무비게이션] ‘기술자들’, 관객 농락하는 116분의 ‘케이퍼’ 작전

등록 2014.12.19 15:27

수정 2014.12.19 15:49

김재범

  기자

 ‘기술자들’, 관객 농락하는 116분의 ‘케이퍼’ 작전 기사의 사진

최동훈 감독의 ‘범죄의 재구성’은 제목부터 ‘케이퍼’스러운 냄새를 물씬 풍겼다. 각각의 인물이 갖는 개연성의 촘촘한 얼개가 완벽한 설계도 속 톱니바퀴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렸다. 한 쪽으로 치우치는 듯한 스토리로 관객들이 긴장의 끈을 풀 때 쯤 영화는 의외의 카운터펀치를 날려 관객들의 오감을 ‘넉다운’ 시켰다. 이른바 ‘반전의 반전’이 가져오는 묘미가 ‘케이퍼 무비’의 맛으로 통하면서 한때 충무로는 ‘반전 코드’에 중독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나온 케이퍼 무비 혹은 반전 영화 가운데 성공은 공교롭게도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 뿐이었다. ‘범죄의 재구성’이 캐릭터에 무게를 둔 영화였다면, ‘도둑들’은 캐릭터 무게에 사건의 치밀한 구성력을 더했다. 쉽게 말하면 ‘케이퍼무비’는 관객의 입장에선 아주 쉽게 보고 즐길 수 있는 전형적인 ‘팝콘무비’다. 하지만 만드는 사람에게 여간 골치 아픈 장르가 아니다.

오랜만에 나온 케이퍼 무비 한 편이 과연 이 같은 공식을 따랐을지는 관객들의 평가로 돌리겠다. 영화 ‘기술자들’은 1500억의 정치권 비자금을 훔치기 위해 각 분야 최고 기술자들이 모여 거대한 판을 놓고 벌이는 과정을 그린다. 무언가를 훔치기 위한 작전을 위해 ‘기술자들’은 각 분야 최고 ‘장인’들이 의기투합을 벌인다. 금고 털이 최강자 지혁(김우빈), 해킹 전문자 종배(이현우) 그리고 두 사람의 조력자이자 인력 섭외 담당자 구인(고창석).

 ‘기술자들’, 관객 농락하는 116분의 ‘케이퍼’ 작전 기사의 사진

태생적으로 ‘케이퍼무비’는 프로타고니스트(선역 주인공)와 안타고니스트(악역 주인공)의 경계선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출발한다. 이후 결말부에서 ‘짠’하는 반전 코드와 함께 그 경계선의 불명확함을 구분지어 준다. ‘기술자들’은 좀 다른 방식이다. 장르적으로는 다소 가벼운 느낌의 캐릭터들이 특징이다. 우선 이들 세 사람은 각각의 인물 뒷얘기가 크게 필요치 않은 듯하다. 경쾌한 터지로 등장하고, 청춘물의 로맨스를 연상시키듯 스타일리시하다. 지혁이 은하(조윤희)에게 접근하는 방식이나 초반 등장하는 다이아몬드 절도 시퀀스는 김우빈의 출세작 ‘상속자들’과 영화 ‘친구2’의 감성을 적절히 섞은 듯한 묘한 맛을 전한다. 중저음의 보이스톤과 190cm에 육박하는 장신 기럭지가 뿜어내는 비주얼 쇼크는 그 자체로 ‘케이퍼 콘셉트’ 화보다.

의외의 인물들은 구인과 종배다. 전례로 볼때 ‘케이퍼’ 장르에서 두 사람과 같은 배역들은 존재한다. 극 전체의 가벼움과 분위기 전환용으로서 구인과 종배 캐릭터는 안성맞춤이다. 지혁의 비주얼에 쏠리는 관객들의 시선 분산과 스토리 자체의 흐름을 이끌 역할을 담당한다. ‘기술자들’에서도 판을 짜는 지혁과 이를 서포트 하는 구인 그리고 종배의 역은 분명히 나뉘어져 있다.

 ‘기술자들’, 관객 농락하는 116분의 ‘케이퍼’ 작전 기사의 사진

세 사람의 역할 구축 반대편은 조사장(김영철)과 이실장(임주환)이다. 두 사람도 처음부터 선역과 악역의 구분점이 흐릿한 상태에서 출발한다. 1500억 판돈의 계획을 배달하는 조사장은 흑막의 검은 손과의 단절을 위해 이 계획을 짠다. 지혁 일당과는 전략적 제휴인 셈이다. 물론 정체성으론 악역이 분명하다. 자신의 회계사를 콘크리트 더미 속에 묻어버리는 잔인함과 온 몸의 문신 그리고 상처는 캐릭터의 전사(前史)가 어떠했는지 설명하는 장치다. 그의 수족 이실장 역시 마찬가지. 얼굴을 가로지르는 커다른 흉터 그리고 묵묵부답에 행동으로만 선보이는 모습은 조사장의 수하로서 적역이다.

완벽하게 꾸려진 캐릭터 잔치는 판을 설계하는 순간부터 진짜 ‘케이퍼’ 스러운 모양새를 갖춰나가기 시작한다. 철통경비 인천세관을 뚫기 위한 치밀한 계획과 5만 원짜리 300만장 1500억을 빼내기 위한 작전은 관객들에게 보는 재미와 진짜 ‘케이퍼’의 묘미를 짜릿함으로 배달한다.

 ‘기술자들’, 관객 농락하는 116분의 ‘케이퍼’ 작전 기사의 사진

물론 이 과정이 영화적으로 치밀하고 빈틈없을 정도의 구성력을 보이지는 않는다. 지혁이 왜 그렇게 순순히 조 사장의 제안을 받아들였는지, 업계 배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종배가 실체가 드러나는 중반 이후의 영화적 톤 변화에 대한 힌트, 은하의 역할, 여기에 이름 없는 배우 조달환의 무리들까지. 불필요와 정도에 따라 허술하기 짝이 없는 구성력과 얼개가 시간이 지날수록 다소 관객들의 맥을 빠지게 만든다. 분명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관객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날 정도로 나사 조임이 느슨해 진 타임이 오면 ‘기술자들’은 진짜 ‘기술’을 펼친다. ‘케이퍼’의 장기인 반전 코드가 작동한다. 모든 인물의 구조가 한 페이지에 담기며 ‘기술자들’의 진짜 기술이 마술을 부린다. 반전 코드의 힌트는 영화 초반부터 곳곳에 숨어 있다.

 ‘기술자들’, 관객 농락하는 116분의 ‘케이퍼’ 작전 기사의 사진

전체적으로 무게감을 덜어낸 경량급의 ‘케이퍼무비’를 보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케이퍼무비’의 힘은 사실 캐릭터들이 만들어 내는 스토리다. 캐릭터와 스토리의 우선 순위가 있을 수 없지만 ‘케이퍼 무비’에서만큼은 캐릭터가 우선돼야 한다. 그래서 비주얼 계통 배우보단 연기력이 출중한 고참급 배우들이 나서는 장르가 ‘케이퍼 무비’다.

‘기술자들’은 그런 면에선 의외의 법칙을 따른다. 젊은 피가 채운 화면은 초반 몰입의 강점을 주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집중력을 떨어트리는 요인으로 작용된다. 하지만 스토리의 반전이 이를 확실하게 커버한다. 사실 그렇게 본다면 ‘공모자들’로 인상적인 데뷔를 한 김홍선 감독이 설계한 치밀한 계획에 관객들이 기분 좋은 속임을 당한 것일 수도 있다.

 ‘기술자들’, 관객 농락하는 116분의 ‘케이퍼’ 작전 기사의 사진

만약 진심으로 이걸 노렸다면 ‘기술자들’은 올해 개봉한 영화 가운데 제목과 목적과 재미가 가장 완벽하게 일치하는 엔터무비다. 개봉은 오는 24일.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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