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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 우애’ 동양家 자매의 엇갈린 운명

[재벌家 여성들⑥]‘금쪽 우애’ 동양家 자매의 엇갈린 운명

등록 2014.11.05 12:04

수정 2014.11.19 09:48

정백현

  기자

비슷하고도 다른 길 걸은 자매···조용한 언니-활달한 동생계열분리 후에도 그룹 CI 공유···‘의좋은 자매’로 유명세지난해 오리온그룹 현금 지원 거부 후 자매 관계 ‘급랭’

1950년대 ‘설탕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고 서남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는 해방 이후 혈혈단신으로 38선 이남으로 내려온 실향민 실업가였다. 서남은 과자 판매업과 시멘트 사업을 통해 오늘날 동양그룹과 오리온그룹의 기반을 만들었다.

서남은 네 살 터울의 딸 2명만을 키웠다. 장녀는 미대생 출신 이혜경 부회장이고 차녀는 사회학을 전공한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이다. 두 딸은 모두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금쪽 우애’ 동양家 자매의 엇갈린 운명 기사의 사진


두 딸은 나이처럼 4년의 터울을 두고 시집을 갔다. 장녀 이혜경 부회장은 1976년 중매결혼을 했고 차녀 이화경 부회장은 1980년 연애결혼을 통해 새로운 가족을 꾸렸다.

이혜경 부회장은 평소 집안끼리 알고 지내던 사이였던 고 김옥길 전 이화여대 총장의 중매로 당시 부산지검 검사이자 고 현상윤 고려대 초대 총장의 손자인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을 만나 결혼했다.

이화경 부회장은 동갑내기(이 부회장이 빠른 1956년생)이자 화교 2세 출신인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과 중학교 때 동급생으로 만나 10여년에 걸쳐 연애를 했고 결혼에 골인했다. 장기 연애를 기반으로 결혼까지 성공한 것은 재계에서 극히 보기 드문 경우다.

서남은 1989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서남이 떠난 동양그룹의 경영권은 첫째 사위인 현재현 당시 동양시멘트 사장에게 넘어갔다. 제과업은 둘째 사위인 담철곤 당시 오리온프리토레이 사장이 맡았다. 재계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사위 경영권 상속’ 사례다.

사위들이 그룹 경영을 하는 동안 서남의 두 딸은 다른 행보를 보였다. 장녀 이혜경 부회장은 경영 참여 대신 가정을 살피는 주부로서의 역할을 중시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활달한 성격의 차녀 이화경 부회장은 경영에 적극 참여했다.

이혜경 부회장은 아버지의 타계 이후 경영에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 1989년 서남 타계 당시 모태기업인 동양시멘트의 비상임이사 직함을 갖고 있었지만 경영 일선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회사 경영보다 어머니 이관희 여사를 돕는 일에 더 열중했다.

이화경 부회장은 1975년 동양제과(현 오리온) 인턴사원으로 입사한 이후 줄곧 회사 생활을 이어왔고 26년 만인 2001년 사장의 자리에 올랐다. 이 부회장은 남편 담철곤 회장과 함께 경영 일선에서 함께 활약하며 재계에서 돋보이는 ‘부부 CEO’로 이름값을 높였다.

이혜경-이화경 자매는 재계 내에서도 우애가 좋은 자매로 명성이 자자했다. 서울 성북동에서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것으로 알려진 두 자매 집안은 평소에도 교류가 잦았고 경영 측면에서도 여러 가지를 공유하는 관계를 유지했다.

붉은색 원에 별 7개가 그려진 동양그룹과 오리온그룹의 CI는 이혜경-이화경 자매의 굳건한 우애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했다. 현재현 회장과 이혜경 부회장은 2001년 동양그룹에서 오리온그룹이 분리할 때 오리온이 동양의 로고를 함께 쓰도록 허용했다.

계열 분리 이후에도 두 집안은 물론 두 기업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계열 분리 과정에서 치열한 경영권 분쟁과 집안싸움으로 홍역을 치렀던 다른 기업과 달리 조용한 성장을 거듭한 덕에 동양가(家)는 재계에서도 손꼽히는 ‘의좋은 형제’로 이름을 높였다.

이혜경-이화경 자매의 이러한 우애는 평생을 가도 깨지지 않을 것 같았지만 결국 돈의 벽 앞에서 금이 가고 말았다.

지난해 9월 동양그룹이 급작스럽게 유동성 위기에 빠지자 현재현 회장은 추석 명절을 계기로 손아랫동서인 담철곤 회장에게 ‘SOS’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담 회장 측은 동양그룹 지원 이후 발생할 수 있는 경영 환경 악화를 우려하며 지원 불가 방침을 세웠다. 당시 담 회장은 “오리온 주식을 동양에 담보로 제공했다가 그룹 지배구조가 오히려 불안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두 집안 간의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그리고 동양그룹은 2조원에 가까운 기업 어음(CP)과 회사채를 막지 못하면서 사실상 해체되고 말았다. 동양그룹의 계열사는 현재 일부만을 남기고 대부분 제3자에게 매각됐거나 매각이 진행 중이다.

현재 자매의 상황은 판이하게 다르다. 현재현-이혜경 부부의 나날은 실로 처참하다. 현재현 회장은 ‘동양사태’의 책임을 물어 징역 12년을 선고받았고 이혜경 부회장은 미술품 밀반출 의혹 등으로 인해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신세가 됐다.

반면 담철곤-이화경 부부는 오리온의 주력 제품인 ‘초코파이’가 오랫동안 글로벌 시장에서 흥행을 유지한 덕분에 눈부신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정백현 기자 andrew.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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