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 25일 목요일

  • 서울 12℃

  • 인천 11℃

  • 백령 12℃

  • 춘천 14℃

  • 강릉 20℃

  • 청주 13℃

  • 수원 11℃

  • 안동 16℃

  • 울릉도 16℃

  • 독도 16℃

  • 대전 14℃

  • 전주 16℃

  • 광주 16℃

  • 목포 15℃

  • 여수 17℃

  • 대구 18℃

  • 울산 19℃

  • 창원 18℃

  • 부산 20℃

  • 제주 18℃

최민식 “‘명량’ 만큼 날 미치게 만든 작품? 단언컨대 없었다”

[인터뷰] 최민식 “‘명량’ 만큼 날 미치게 만든 작품? 단언컨대 없었다”

등록 2014.07.30 13:36

김재범

  기자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완벽하게 개인적인 우려였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영화가 기획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도 드디어 완벽한 히어로 무비가 나오는 구나’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주인공이 최민식이란 얘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낙담했다. 최민식이란 배우에게 연기력을 의심하는 것은 ‘어불성설’의 단계를 넘어서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럼에도 그런 우려가 들었던 점은 최민식이란 배우가 가진 아우라 때문이다. 워낙 색깔이 뚜렷한 카리스마의 연기톤이 자칫 이순신이란 역사적 실존 인물을 가공의 캐릭터로 만들어 버릴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우려는 정확하게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개인적인 오판으로 막을 내렸다. 영화 ‘명량’ 속 최민식은 없었다. 진짜 이순신 장군이 살아 돌아온 것 같았다. 아니 이순신 장군 그 자체였다.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해가 지면서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머리에 서릿발이 군데군데 내려앉은 최민식은 창가의 노을을 감상하고 있었다. 잠시 눈이 의심스러웠다. 분명 ‘명량’ 속 이순신 장군이었다. 그는 ‘장군님’이라고 깍듯하게 호칭을 했다. 분명 그래야 하는 게 옳다. 다소 ‘그럴 필요가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생각은 확고했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이순신 장군을 너무도 존경하게 됐어요. 사실 지금도 장군님이 완벽하게 이해되지가 않아요. 글쎄요. 혹시 그런 생각은 안드시나요. 실제로 존재하시던 분일까라는. 역사적인 팩트만 봐도 그래요.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라고. 상식적으로 자신을 죽이려는 왕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려는 결정을 해요. 누구하나 자신의 편이 없어요. 그런데도 그는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립니다. 대체 사람이 어떻게 이럴까요. 이게 전부 사실이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죠.(웃음)”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최민식은 조금은 격한 목소리로 이순신 장군에 대한 경외심을 전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사료는 사실 그리 남아 있지 않다. 광화문 광장의 동상, 백원짜리 동전의 뒷면, 거북선을 만들고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분 정도가 대한민국 국민들의 기억 속 이순신 장군의 모든 것이다. 최민식 본인도 그랬단다. ‘연기의 신’으로 불리는 그도 이번처럼 막막하기는 처음이었다고.

“아마도 데뷔가 아닌 내가 연기란 것을 접한 이후 가장 힘들었던 작품이에요.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아요. 장군님에 대한 자료가 사실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아요. 결국 ‘난중일기’를 읽어보는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이걸 읽을수록 더욱 경외심만 드는 거에요. ‘대체 사람이야?’란 생각이랄까. 꼭 여쭤보고 싶었죠. 문 앞에 가서 ‘장군님 10분만 시간 좀 내주십시오’라고 문을 두드리는 데 기척조차 안주시는 기분? ‘어디 너 같은 놈이’라는 말씀이 들리는 데 정말 고개를 못들겠더라구요. 그 분을 알아갈 수록 난 정말 발톱에 낀 때도 안 된다는 생각만 들고.”

그의 막막함이 실제 전해지는 듯 했다. 사실 영화 속 이순신 장군, 아니 실제 ‘명량해전’을 앞둔 이순신 장군의 막막함도 그러했을 것이다. 영화에서도 모든 이들이 반대하는 전쟁을 홀로 강행한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신마저 도망친다면 조선은 왜군들에게 짓밟히게 된다. 더군다나 조정 대신들의 모함에 휩싸여 온갖 고초를 겪고 다시 전장으로 복귀한 그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그냥 여쭤보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지금도. ‘왜 싸우셨느냐’라고. 대사에도 나오 잖아요. 충은 왕이 아닌 백성을 향해야 한다고.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누가 알아나 주나요. 백성들은 제 살길 바빠 도망치는 데, 대체 장군님은 왜 그러셨는지. 사실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니 내가 미치는 것 같았죠. 그때 장군님은 어떠했을까. 회의 장면에서 힘들게 한 숨을 내쉬셨는데 실제로도 그러셨을까. 정말 도망치고 싶지는 않으셨을까. 아니면 진짜 그렇게 단호하게 전쟁을 임하셨을까. 그것도 아니면 혼자 고민만 하셨을까. 지금도 그냥 타임머신이 있다면 돈이 얼마가 들던 타고 가서 꼭 여쭤보고 싶어요. 이러니 ‘명량’ 속 내 연기가 모두 가짜 같아요. 지금 인터뷰도 너무 죄송스러워요. 장군님에게 혼나고 있는 것 같고.”

그는 인터뷰하는 동안 어느 쪽을 의도적으로 등지고 앉았다. 장소가 삼청동이고 대략적으로 최민식이 등지고 있는 곳은 이순신 장군이 보이는 쪽이었다. 인터뷰 내내 ‘답답하다’ ‘죄송스럽다’ ‘내 연기에 자신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그의 모습에서 전장 속 이순신 장군이 자꾸만 보였다.

“그러시면 안 되요. 저쪽에 장군님 계신데(웃음). 사실 아까도 오는 데 매니저가 광화문 앞길을 지나가야 하는데 ‘돌아갈까요’라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그럼 나 진짜 혼난다’라고 했죠. 솔직히 ‘취화선’도 실존 인물인 장승업에 대한 얘기지만 이러진 않았거든요. 이렇게 안개 같고 까마득한 느낌은 처음이죠. 인터뷰 동안 무슨 말씀을 해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냥 그분에 대해 생각하면 막연하게 이래요. 남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본분을 지켰다는 것.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자신을 다그쳤을까. 반대로 내 모든 인격적 가치관을 총동원해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 그래서 더욱 존경심이 생기고 그 어떤 말도 못하겠어요.”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그럼에도 최민식이 막연히 상상했던 단 한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은 꼭 필요했었다고 한다. 아니 이순신 장군이라면 정말 그랬을 것 같다고 하더라. 그 분을 막연하게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 보여주고 고뇌와 번민을 앓던 영웅이지만 시대를 살아간 인물로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고 한다. 영화 속 아들과의 대화 장면이다.

“실제 난중일기를 보면 장군께서 약주를 정말 즐기셨다는 부분이 많이 언급되요. 그래서 혹시 아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있지 않을까 상상해 봤어요. 장군님이 정말 효자셨데요. 그런데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거의 반평생을 전장에서만 보내셨죠. 얼마나 외로우셨을까요. 난중일기에 실제로 나와요. 며칠을 혼자 있는데 누구하나 내게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다고. 참 괴로우셨을거에요. 그 속을 털어내는 대상이 아들이 아니었을까. 물론 영화 속에선 딱 할 말만 했어요. 실제로도 난중일기를 통해 느낀 장군님의 성품으론 그러셨을 것 같아요. 참 기억에 남는 장면이에요.”

실제 이순신으로 살아온 최민식이 만약 ‘명량’의 한 복판에 서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는 “영화 속 오상구가 도망친 것처럼 나도 그랬을 것이다”고 웃었다. 삶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는 그게 맞다고 한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그러지 않았고 불가능한 실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을 ‘성웅’이라고 부르는 것일 수도 있다고 최민식은 전했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영화 마지막 한산도대첩 에피소드가 나온다. ‘명량’ 제작 전 ‘한산도’ ‘노량’을 묶은 이순신 장군 3부작 영화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사실이다. 하지만 최민식은 다음편 출연에 고개를 저었다. 손사래까지 쳤다.

“지금도 죄송스런 마음인데 이걸 다시 하라구요. 절대 못해요(웃음). 글쎄요. 꼭 최민식이 했다고 다음편도 그래야 할까요. 꼭 김한민 감독이 만들었다고 다음편도 그래야 할까요. 얼마나 실력 좋은 배우들과 감독들 많아요. 최민식의 이순신 장군이 이랬다면 다음 편에선 다른 이순신 장군을 봐야죠. 장군님도 저 같은 놈보다 다른 뛰어난 배우를 통해 다시 돌아오시는 걸 원하실거에요(웃음)”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인터뷰가 끝나고 광화문 광장을 지나게 됐다. 우뚝 선 이순신 장군 동상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서 영화 ‘명량’ 속 최민식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이순신 장군이 최민식을 흐믓하게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ad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