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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것에 대한 진짜 불편한 얘기

[무비게이션] ‘역린’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것에 대한 진짜 불편한 얘기

등록 2014.04.25 16:17

김재범

  기자

 ‘역린’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것에 대한 진짜 불편한 얘기 기사의 사진

영화 ‘역린’에 대한 불편한 시각들이 많이 쏟아지고 있다. 종합하면 한 가지다. “재미가 없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봤다. ‘역린’을 통해 재미를 찾는다는 것, 아니 흥밋거리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오류’란 생각을. 대한민국이 역사 문제에 있어서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교육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역린’의 스토리는 이미 삼척동자다 다 아는 그 유명한 ‘정유역변’이다.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 ‘이산’을 암살하기 위해 노론(그렇게 추정)이 자객을 왕의 침전까지 침투시켰던 실록에도 기록된 팩트다. 그럼 ‘역린’은 시작부터 스포일러를 까발린 채 관객들의 선택을 기다린 꼴이 된다. 그런데도 일부 ‘역린’에 반감을 갖는 ‘리뷰’ 기사를 보면 ‘정조의 존재감이 적다’ ‘상책과 살수의 얘기가 너무 많다’ ‘등장인물이 많다’ ‘인물들의 과거 얘기가 많다’ 등이다. 다시 말하지만 종합하면 “재미가 없다”란 말이다.

정말 그럴까. 하나하나 따져보자. 우선 ‘정조’역을 맡은 현빈의 존재감을 지적한 것이 대다수다. 혼자만의 착각(은 해당 기자)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다수(다른 리뷰 기사)의 착각일 수도 있다. ‘역린’의 주인공은 ‘정조’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정조’(현빈)의 스토리에 집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역린’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것에 대한 진짜 불편한 얘기 기사의 사진

‘역린’은 기본적으로 ‘정유역변’이 일어나기 하루 전, 24시간 동안 있었던 상황에 대한 스토리다. 왜 왕을 죽여야 하는지, 그 왕을 죽이기 위해서 어떤 과정이 벌어지는 지, 그것도 아니면 그 왕을 죽이기 위한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서 그래야 했는지가 중요하다. 결국 24시간이란 한정된 시간 속에서 긴박하게 벌어진 상황에 대한 영화다. 그것에 대한 이유가 바로 시간의 역순 전개다.

역순 전개는 현대극에서도 사용되지만 사극 특히 팩션극에서 주로 많이 이용한다. 이미 결과가 드러난 상태에서 그 결과로 이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전하는 스토리 전개에 안성맞춤이다. ‘역린’의 경우 첫 장면에서 화면을 채운 ‘칼부림’의 ‘잔음’이 관객들의 귀에서 꺼지기 전에 시간의 구분점을 두고 역순으로 스토리는 거슬러 올라간다. 이런 방식을 통해 ‘잔음’에 대한 궁금증이 무엇인지 왜 그랬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하나씩 벗겨나가는 일종의 추리극으로 돌변한다.

 ‘역린’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것에 대한 진짜 불편한 얘기 기사의 사진

시간의 구분점을 둔 시퀀스 제단 방식도 독특했다. 한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을 상기시키기 위해선 관객들도 스토리 안에 동참시켜야 하는 일종의 강요가 필요하다. ‘역린’은 시간을 기준으로 나눈 편집을 통해 각 단계별 긴장감의 강약을 조절하는 시도를 한다. 이미 결과는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 알고 있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를 관객은 알아야 하고, 그것을 ‘시간’으로 나눠 ‘레벨 테스트’와 같은 긴장감을 유발시킨 것이다.

이 같은 전반적인 과정의 얘기를 하는 ‘역린’이기에 사실 캐릭터의 중요성은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된다. 영화는 상황이 주가 되는 얘기가 있고, 인물 혹은 캐릭터가 주가 되는 얘기가 있다. 물론 이 두 가지가 적절하게 합일점을 찾아 배분된 얘기라면 평단은 그것을 ‘걸작’이라고 칭한다. ‘역린’은 그 범주에까지 들어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완벽하게 상황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기에 큰 무리가 없는 범작 수준까지는 끌어 올렸다.

 ‘역린’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것에 대한 진짜 불편한 얘기 기사의 사진

‘정조’는 (正祖, 1752 ~ 1800)는 조선시대 아니 한반도 역사상 가장 극적인 삶을 살았던 왕 중 한 명이다. 자신의 외가로인해 아버지를 잃었고, 할아버지(영조)의 계비이자 자신보다 10세는 어린 ‘새 할머니’ 정순왕후에게 평생을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살았다. 실제 정사를 보면 정조의 ‘붕어’(왕의 죽음) 순간은 정순왕후만 지켰다고 한다. 결국 정순왕후의 위협에 평생을 가슴 졸이며 살아왔고 그 최후를 정적인 새 할머니에게 고스란히 헌납한 비운의 왕이다.

‘역린’은 그런 정조의 불안하고 또 그 불안 속에서 강직하면서도 숨은 분노와 칼을 숨긴 내면을 그린 영화가 아니다. 물론 어머니 혜경궁 홍씨(김성령)는 “너희들은 내 아들을 모른다”며 정조의 바닥을 알 수 없는 근원적 복수심을 경고했다. 하지만 ‘역린’이 포커스를 맞추고 있던 부분은 그곳이 아니다. 아니 실제로는 ‘왕의 노여움 혹은 분노’를 뜻하는 ‘역린’이란 제목 자체가 힌트였을 수도 있다. 잠재된 왕의 분노, 그리고 그 분노를 막기 위한 그 주변 사람의 얘기 말이다. 왕이 분노하면 따라오는 결과는 피바람이다. 그런 우려 때문인지 실제 역사에서처럼 ‘정유역변’ 그리고 ‘역린’ 속 사건의 결과는 실패로 돌아간다. 정조 역시 자신의 ‘역린’을 덮어 둔다.

 ‘역린’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것에 대한 진짜 불편한 얘기 기사의 사진

그럼 그 주변, 다시 말해 ‘정유역변’이 일어나기 하루 전, 왕의 주변에서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 부분에서부터 ‘역린’은 완벽하게 픽션이 된다. 왕을 죽이기 위해 궁에 침입한 자객은 실제로도 있었다. 영화 속 조정석이 맡은 살수는 말한다. “왕을 죽인다고 해도, 난 왕을 죽인 역적이 된다. 실패해도 난 임무를 실패한 살수다. 어떤 경우라도 난 죽는다”라고. 뻔히 죽을 길임을 알면서도 궁으로 향한 살수, 왜 갔을까. 이 부분이 확장되면서, ‘역린’에서 사족이라고 지적되는 스토리가 전개된다.

‘정조’를 죽이기 위한 살수, 그런 정조를 곁에서 지키는 내시 상책(정재영), 정조의 호위 무사 홍국영(박성웅), 정조의 죽음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정순왕후(한지민), 아들의 죽음을 어떻게 해서든 막아보려 하는 혜경궁 홍씨(김성령) 그리고 그 주변에 퍼진 무수히 많은 인간들.

각 인물들 간의 대립관계가 지나치게 장황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미 시작과 결과를 알고 있는 ‘정유역변’이란 팩트 자체만으로 영화가 구성됐다면 ‘역린’은 제작조차 불가능했던 영화다. 영화적 흥미 유발 요소가 전혀 없는 기승전결이 전부 공개된 스토리를 누가 돈을 내고 관람하겠나. 때문에 가상의 인물인 살수와 상책 월혜 광백 등을 투입했다. 또한 정순왕후 그리고 그의 대척점에 선 혜경궁 홍씨의 관계도는 필연적으로 소개돼야 옳았다. 각 인물의 얽히고설킨 이유가 분명하다면 ‘역린’의 핵심인 ‘정유역변’이 왜 일어났는지가 설명된다. ‘정유역변’을 구심점으로 각 인물의 관계도가 방사형으로 퍼져나가는 구조도가 완성돼 있다고 보면 된다.

 ‘역린’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것에 대한 진짜 불편한 얘기 기사의 사진

물론 ‘역린’은 사극이란 장르적 특성에 따른 약점도 당연히 있다. 135분이란 러닝타임 동안에 등장해야하는 인물이 많다. 그 인물들에게 각각의 이유가 부여돼야 한다. 이유는 결국 캐릭터간의 앞뒤 맥락을 이어줘야 하기에 플레시백을 활용한 전사(前史)가 따라와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배제하고 정조에게 포커스를 맞춘 채 스토리의 동력을 집중시킨다면, 혹은 주변 인물의 스토리를 보다 간결하게 정리했다면 오히려 ‘정유역변’이란 ‘역린’의 핵심 줄기는 의미 자체를 잃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정유역변’은 복수심에 불탄 아집과 독선의 군주를 제거하기 위한 노론의 정당한 혁명이 되고 만다.

 ‘역린’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것에 대한 진짜 불편한 얘기 기사의 사진

결국 ‘역린’은 ‘살아야 하는 자, 죽여야 하는 자, 살려야 하는 자, 역사 속에 감춰졌던 숨막히는 24시간’이란 메인 카피에 너무도 충실한 사극의 장르적 특성을 아주 걸출하게 따라간 결과물이 됐다.

초반 늘어지는 전개, 중반 인물간의 대립관계 해설, 후반부에 등장하는 일부 사족, 이 같은 해석은 이미 ‘역린’ 속 정조에 대한 착각이 불러일으킨 오판이다. 이미 20부작 30부작 50부작 드라마를 통해 수 없이 반복된 정조 아닌가. 왜 우리가 알고 있는 정조의 그것과 틀리다고 하는 것은 관객들이 갖는 완벽한 착각이다. 이건 ‘역린’이다.

 ‘역린’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것에 대한 진짜 불편한 얘기 기사의 사진

현빈이 주인공인 ‘역린’이 아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폭발한 왕의 노여움, 그 ‘역린’을 보여주기 위한 135분의 새로운 시도다. 이재규 감독의 상업영화 감독 데뷔작으로선 그만이다. 앞으로 정조에 대한 새로운 얘기는 ‘역린’이란 기준점을 갖게 될 것 같다. 개봉은 오는 30일.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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