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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예대금리차 공시' 무용론 솔솔···'관치금융' 싸늘한 시선

오피니언 데스크 칼럼 차재서의 뱅크업

'예대금리차 공시' 무용론 솔솔···'관치금융' 싸늘한 시선

등록 2022.07.07 18:16

차재서

  기자

reporter
"아무래도 금리는 은행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그래도 정권 초기이고, 새 금융감독원장도 취임했다보니 목소리를 내기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금융당국이 예대금리차(예금과 대출금리 차이) 공시 제도를 뜯어고치겠다고 선언하자 은행권이 당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의 주요 공약인 만큼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실효성에 의구심이 들 뿐 아니라, 이를 계기로 금리를 정할 때마다 정부 눈치를 보게 생겼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가 6일 공개한 예대금리차 공시 개편 방안은 각 은행이 매달 새로 취급한 대출과 예금 금리 차이를 은행연합회에 공시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공시기준은 은행 자체 신용등급이 아닌 신용평가사 신용점수다. 기존에는 1~2등급, 3~4등급과 같이 은행 차원에서 산출한 등급별 평균 금리를 제시했다면, 앞으로는 1000점 만점의 신용점수를 50점 단위(총 9단계)로 쪼개 정보를 구성하게 된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금리 인상기 속에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선택권을 넓히고자 마련됐다. 지금도 예대금리차를 분기마다 공시하고 있지만 은행간 비교가 어렵고 공시주기(3개월)도 길어 적시성 있는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가 소비자의 이자 부담을 덜어줄 것으로 당국은 기대하고 있다.

반면, 은행권의 반응은 싸늘하다. 취지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새로운 공시 제도가 소비자에게 혜택을 가져다주기보다 오히려 혼란을 키울 것이란 우려가 짙다.

혼동하지 말아야 할 대목은 '예대금리차'가 말 그대로 '예금 금리와 대출 금리의 차이'를 뜻한다는 점이다. 은행이 예대마진을 얼마나 챙기는지를 판단하는 지표로 활용되긴 하겠지만, 소비자에게 어느 은행의 대출 금리가 낮고 예금 금리가 높은지를 알려주는 수치는 아니라는 얘기다.

평균 대출금리가 8%, 예금금리는 6%인 A은행과 대출금리가 5%, 예금금리는 3%인 B은행을 놓고 따져보자. 두 은행의 예대금리차는 2%p로 동일하다. 다만 이 숫자가 B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A은행 예금을 가입하라는 신호를 주진 않는다. 소비자 입장에선 차라리 개별 은행 홈페이지에 들어가 상품별 금리를 확인하고 지점을 찾아 상담을 받는 게 정확한 정보를 얻는 방법이 아닐까. 지금도 은행연합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은행별 금리 운영 상황을 공유한다.

이렇다보니 일각에선 벌써부터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유의미한 정보를 주지 못할뿐더러, 이를 축소하려는 은행의 작위적 노력이 이어지면서 결국 은행권의 예대금리차가 '하나의 숫자'로 수렴할 것이라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극단적으로 접근했을 때 은행으로서는 고금리 대출, 즉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줄이고 고신용자를 위한 저금리 대출을 확대하는 식의 대응도 가능하다.

은행의 더 큰 걱정은 핵심 영업 정보 대부분을 공개하게 되면서 경영 전반에 정부의 입김이 닿는 '관치금융'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데 있다. 이번 개편이 금리를 특정 수준으로 끌어내리려는 것은 아니라고 금융위는 주장하지만, 은행으로서는 당국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돼서다. '지켜보고 있으니 알아서 잘하라'는 메시지가 아니고 무엇이겠냐는 볼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새 정부와 마주한 은행권의 피로감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은행을 '이자 장사'로 낙인찍은 여당과 당국으로부터 금리를 낮춰 고통 분담에 동참하라는 압박이 이어진 탓이다. 이에 주요 은행은 서둘러 대출 금리를 내렸고, 일부는 이례적으로 금리를 지원하는 상품도 내놨다. 금리가 워낙 순식간에 올라 대응할 여력이 충분하진 않지만, 당정의 강경함에 어떻게든 움직여야 했다고 이들은 귀띔한다.

굳이 헌법 조항까지 읊지 않아도 은행이 공공성을 띠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코로나19 장기화와 금리 인상 국면으로 경제 전반이 위축된 가운데 은행이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는 게 국민의 박수를 받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 놓인 정부의 태도는 상당히 아쉽다. 금융업 발전을 이끌어야 할 정부가 은행을 향한 부정적인 정서를 부추기는 것처럼 여겨져서다. '이자'라는 민감한 소재로 그들의 성과를 폄훼함으로써 금리 인상기 속수무책으로 일관하는 정부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부디 예대금리차 공시 제도가 은행을 옥죄는 또 다른 수단이 되지 않길 바란다. 국민 모두의 동의를 얻은 것은 아니지만, '기업 규제 완화'가 이 정부의 핵심 목표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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