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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ESG 공시’ 움직임이 반가운 이유

오피니언 기자수첩

[임정혁의 금융팀 타자기]‘ESG 공시’ 움직임이 반가운 이유

등록 2021.10.27 08:18

임정혁

  기자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한 끗 차이를 바라보자는 시선이 금융권에서도 힘을 얻고 있다. 시대 화두로 떠오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제대로 들여다보자는 목소리다. 이른바 가짜 ESG 경영으로 불리는 ‘그린 워싱’을 경계하자는 뜻이다.

때마침 금감원도 움직였다. 정은보 금감원장은 “상장법인의 ESG 공시 제도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라며 “그린워싱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어 왜곡된 ESG 정보로 투자자 신뢰 저하가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빠르면 빠르고 늦으면 늦었다고 할 수 있다. 아직 글로벌 ESG 공시 표준이 없다는 점에서 보면 이르다는 불만도 이해가 간다. 이제 막 금융권에서 ESG 경영에 속도를 내는 와중에 개편될 공시 제도에 대응하려면 현장의 혼란이 가중될 것이다. 하지만 ESG의 핵심 중 하나가 사회적 가치 창출이므로 불분명한 것들을 빠르게 지워나가자는 쪽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게다가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 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금융 얘기고 금융사 얘기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차라리 작은 혼란으로 큰 혼란을 상쇄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단적으로 올해 상반기 4대 시중은행의 ESG채권 발행액이 5조원이다. 이미 작년 발행 실적의 70%를 반년 만에 달성했다. 이 돈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어느 방향으로 투입돼야 미지의 대상이지만 올바른 것처럼 보이는 ESG 경영에 한 발 더 닿을까. 질문에 답을 하려면 사후 측정과 평가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설익더라도 투명한 공시가 먼저다.

정 원장의 공식 발언을 곱씹으면 ESG 공시 의무화는 어느 정도 물밑 작업을 끝낸 것으로 파악된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지난 8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정책당국은 ESG 공시체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까지 ESG 공시를 누구에게 언제까지 강제할 것인지를 두고 일정 수준 계획을 수립했으며 2030년까지 ESG 공시의무를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업종별 이해관계를 고려해 단일 기준 ESG 보고체계 확립까진 진통이 예상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정보 수요를 위한 정확한 공시의무가 필요하다는 것엔 보고서에서도 이견이 없다.

사실 그린워싱 사례는 이미 다른 나라 금융사에서도 벌어진 일이므로 우리라고 안심할 수 없는 불씨다. 최근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내놓은 ‘글로벌 금융회사의 그린워싱 사례와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금융사들의 그릇된 ESG 경영 사례가 가득하다. 부적합한 펀드나 대출 상품을 ESG로 분류하거나 이름만 바꿔 고객에게 제시하는 등 실질적인 개선 없이 ESG를 홍보 수단으로 삼는 것이 대표적이다.

독일 도이치은행 계열 운용사 DWS는 기준에 부적합한 펀드를 ESG 상품으로 분류해 허위 공시 의혹에 휩싸였다. 독일과 미국 금융당국이 조사에 착수했는데 설상가상 DWS는 2020년 지속가능성 보고서에서 전체 운용자산(9천억유로)의 약 50%(4590억유로)가 ESG관련 자산이라고 발표했다. DWS는 그린워싱 의혹을 부인했지만 조사가 시작되면서 하루 만에 주가가 14% 가까이 폭락해 평판이 추락하고 기업가치가 하락했다.

영국 금융그룹 HSBC는 2050년 탄소 제로와 함께 2030년까지 약 1조달러의 기업 에너지 효율화 지원 계획을 발표했지만 화석 연료 파이낸싱 중단 계획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HSBC의 2016년 파리협정 체결 이후 누적 파이낸싱 규모는 1108억달러로 글로벌 13위에 올랐다는 점에서 화석연료 중단 계획이 빠진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미국 전문투자자문사인 뱅가드그룹은 자사가 운용하는 US ESG ETF의 수익률 제고를 위해 구글과 애플 등에 투자하면서 일반 테크핀 ETF를 명칭만 ESG로 바꿨다. 또 다른 미국 투자금융사인 프랭클린 템플턴 인베스트먼트는 ESG 펀드를 운용하면서 ESG와 무관한 기업에 투자하거나 투자대상 기업의 적극적인 ESG 경영을 촉구하는 투자자 행동주의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받고 있다.

전부 ‘친환경’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사의 최근 ESG 경영이 보여주기 위한 이미지 세탁으로 번진 것 아니냐는 비판을 낳을 수 있는 대목이다. 명확한 평가 기준이나 규제가 미비하므로 기업 가치를 긁어먹는 안 하느니 못한 ESG 경영이 될 수 있다는 견제 목소리다.

우리도 이런 사례가 얼마든 나올 수 있어 경계해야 한다. 최근 금융권에서 속속 내놓는 자체 발표를 보면 ESG는 빠지지 않는다. 투자집행, 기부활동, 봉사활동, 행사개최, 사내 캠페인, 직원교육, 채용계획을 비롯해 심지어 수익 다각화를 위한 신사업에 나서면서도 작은 것 하나라도 ESG와 연결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언뜻 긍정해 보면 한없이 ESG 경영과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실눈을 뜨고 몇 초만 응시하면 이런 것까지 ESG와 연결할 수 있느냐는 엄정한 자문이 밀려온다. 모든 것을 ESG 경영과 묶으면 금융사가 자사를 위해 수익을 내는 것도 국가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한 ESG 경영으로 묶일 판이다. 극단적인 비유지만 달리는 고속 열차엔 올바른 목적지와 연결된 선로가 필요하며 선로는 누가 봐도 정갈하고 단정해 어느 곳에서든 안전해야 사고가 없다.

특정인과 집단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이동걸 산업은행장의 발언은 의미가 있다. 이 은행장은 ESG 경영과 관련해 “단순히 돈을 뿌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면서 “형식을 지양하고 실질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데 주력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산업은행은 그 흔한 ESG위원회도 따로 없다.

최근 금융 업계에선 특정 금융사의 ESG 경영 행보를 단번에 파악하기 버겁다는 목소리가 자자하다. 예를 들어 A사가 B사의 활동을 참고하거나 벤치마킹하기 위해서도 꽤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사정이 이런데 외부에서 이를 이해하려면 얼마나 더 마우스를 클릭해 나가는 수고가 필요할까.

그만큼 최근 금융사의 모든 활동이 ESG 경영이란 타이틀을 달고 언급되는 터라 정보 과잉인지 홍보 난립인지조차 판단하기 어렵다. 단번에 이해할 수 없으면 속기 쉽고 속기 쉬우면 당하기 쉽다. 금감원의 ESG 공시 체계화 움직임이 반가운 이유다.

뉴스웨이 임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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