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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조 추천 이사제, ‘노조’보다 ‘책임 공유’에 주목해야

오피니언 기자수첩

[차재서의 뱅크업]노조 추천 이사제, ‘노조’보다 ‘책임 공유’에 주목해야

등록 2021.07.21 07:21

차재서

  기자

reporter
“‘노조 추천 이사제’ 도입은 노동조합이 경영에 개입할 토대를 만들겠다는 의미다. 부작용도 상당하다. 이사회 참여 기회가 없는 제조업 근로자라면 명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금융노조는 다르다. 경영진과 비슷한 일을 하고, 노조 활동을 하다 경영진이 되는 사례도 있다. 그 틈에 우리가 추천하는 이사를 채택하라는 노조의 주장은 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2020년 2월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 야당 의원이 당시 노조와 ‘노조 추천 이사제’ 도입 검토에 합의한 윤종원 기업은행장에게 건넨 발언이다.

지난 1년반 동안 이 얘기를 곱씹어봤지만 아직까지 정리가 되지 않는 구석이 있다. 뒤집어 놓고 보면 오히려 금융권 ‘노조 추천 이사제’ 도입을 주장하는 측의 논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경영진과 함께 생활하면서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장차 CEO가 될 수도 있는 은행 근로자가 경영상 의견을 제시하는 게 그리 문제 될 일이겠느냐는 생각에서다. 그럼에도 ‘늘 경영진과 충돌하는 노조’가 주장했다는 이유로 ‘전직원 성과 공유’란 제도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노조 추천 이사제’는 노조가 이사를 추천하는 제도다. 이사로 선임된 사람은 정관에서 정한대로 사업계획·예산·정관개정·재산처분 등 경영 사안에 대한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구성원 모두가 성과를 책임지는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로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유럽에선 독일·프랑스·스웨덴 등 15개국이 공공·민간부문에 이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다만 ‘노조 추천 이사제’ 도입은 사실상 좌초 위기에 놓였다. 기업은행에 이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서도 노조 측 추천 인사가 고배를 마시면서다. 수출입은행이 남아있기는 하나, 이들 역시 협상에 난항을 빚으면서 올해도 무산될 것이란 인식이 짙다.

여기엔 각 금융기관의 주무부처인 정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노조 추천 이사제’가 제도화되지 않았는데 이를 시도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을 떠안아야 하고, 노조 측 인사를 사외이사로 앉히면 업무 조율도 어려워질 수 있으니 조심스러워 하는 것이란 분석이다. 이에 수은은 물론 기업은행과 캠코 노조도 각각 인사를 추천했지만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에 막혀 불발된 바 있다.

지난달 국회 대정부질문에 나선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후보 추천이 오면 역량을 보고 편견없이 사외이사를 선정하겠다”면서도 “노동이사제와 관련해선 이를 제도적으로 안착시키려는 공운법(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 개정안이 발의됐다”고 언급했다. 제도 구축이 선행되지 않으면 정부도 그 부담을 짊어질 수 없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물론 정부가 이러한 스탠스를 취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윤종원 기업은행장의 말처럼 노조 추천 이사제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사안이어서다. 임작원간 의견 조율이 활발해진다는 장점 이면엔 노조의 지나친 경영개입으로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덧붙여 대립적·갈등적 노사관계를 벗어나지 못한 우리나라에선 이 제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같은 채용절차를 거쳐 입행해 퇴직하기까지 대부분 비슷한 환경 속에 생활하는 은행원의 특성에 주목한다면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게 일각의 시선이다. 말단 행원부터 경영진에 이르기까지 업(業)을 바라보는 관점이 크게 다르지 않고, 이들 모두 은행이 안정적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하는 만큼 ‘노조 추천 이사제’를 협상·갈등 도구로만 사용하지 않을 것이란 논리다.

또 일선 현장과 경영진의 정서적 간극이 상대적으로 작은 은행권에서 이를 먼저 시도해 경영 성과 책임을 나눠 갖는 문화를 만든다면 다른 산업에 귀감이 될 수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게다가 기존 사외이사 제도에 문제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해마다 낙하산 인사가 금융기관 사외이사 자리를 채우면서 ‘거수기’나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를 놓고 국책은행 노조 관계자는 “사외이사 제도가 제대로 운영됐다면 노조 추천 이사제는 추진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지금 수출입은행의 사외이사 자리가 2개월 가까이 비어있는 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게 그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비록 당장은 ‘노조 추천 이사제’ 도입을 장담하기 어렵게 됐지만, 추후엔 ‘갈등’ 프레임에서 벗어나 ‘경영문화 개선’ 관점에서 노사간 건설적인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디지털 혁신으로 생활양식이 급변하는 가운데 이 사안을 놓고는 과거의 사고에 얽매여 변화를 주저하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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