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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일본 수출규제의 교훈 ‘소재 국산화’···이제는 K-배터리

오피니언 기자수첩

[임정혁의 산업부 타자기]일본 수출규제의 교훈 ‘소재 국산화’···이제는 K-배터리

등록 2021.05.27 09:13

임정혁

  기자

2019년 7월 1일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라는 그물망으로 우리 산업의 심장을 조준했다. ‘2019 G20 오사카 정상회의’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강조한 지 사흘 만이었다.

당시 공동 성명으로 미·중 무역 분쟁이 한동안 휴전 국면을 맞을 것이라는 예측이 있던 터였다. 가뜩이나 미·중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우리 기업들은 이제 막 중간고사를 마친 수험생처럼 한숨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일본이 정치적 문제를 경제로 발화해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요한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불화수도 등 3가지 품목의 한국 수출을 개별허가로 바꾸겠다면서 사실상 우리 산업의 핵심을 찔렀다.

경제보복이나 다름없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을 향한 보복이 아닌 수출 구조를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나온 조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형적인 가해자 입장일 뿐이었다. 맞아야 하는 우리로선 핑계이자 변명으로 들렸다.

정치적 사안을 경제보복으로 풀겠다는 일본의 교묘함이 아니라면 수출 대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백색국가’ 목록에서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한국만 제외할 까닭은 없었다. 한일 양국이 경제적으로 연결된 특수성이 있어 정치적 문제로 경제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그간의 암묵적 약속도 이날 산산조각이 났다.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당장은 어떤 기업도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속 시원히 답하지 못했다. 내부에서 수많은 대책 회의가 돌아가고 대응팀이 돌아가고 있지만 구태여 언론을 통해 일본 정부 심기를 건드릴까 봐 기업들이 말을 아낀다는 분석도 떠돌았다. 외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낙관과 비관으로 의견이 분분했다.

확실한 건 일본이 수출규제를 지목한 3가지 품목에서 우리의 수입 의존도가 90%를 넘는 다는 점이었다. 당장의 타격은 불가피해 보였고 그것이 하필 우리 산업의 근간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라는 불안감만 커졌다.

그사이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계 일각에서는 실행하기 쉽지 않았던 일본산 소재 의존도를 낮춰야한다는 문제가 결국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말도 나왔다. 시간, 비용, 기술력, 일본과 관계, 정치적 셈법을 포함한 총체적인 문제로 모두가 알지만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일본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라고 소리치지 못했던 문제가 터졌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나마 행간에서 읽을 수 있었던 점은 “소재 국산화의 필요성을 알고 있었으며 전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물밑에선 움직임이 꾸준했다”라는 설명이었다.

이후 대기업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중소기업을 포함한 산업 생태계가 주목받았고 이참에 물러서지 않고 일본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정부의 뒷받침이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일본 경제보복 초기인 2019년 7월 일본산 수입액이 전년대비 14.5% 줄고 반도체 수출액이 전년대비 30% 감소하는 등 우려가 커졌지만 두 손 먼저 든 곳은 오히려 일본이었다. 일반적인 시선에서 주목받지 않던 우리 소재·장비 기업들이 대대적으로 부각됐고 이런 회사의 주가도 상승 곡선을 그리면서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마침내 1년이 채 안 된 2020년 5월 우리 정부는 일본이 주요 수출 규제 품목으로 삼았던 3가지 품목에서 공급이 완전히 안정화됐다고 선언했다. 이를 전후해 일본 언론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놓쳤다”면서 “일본 정부가 오히려 한국의 벌집을 건드렸다”라는 푸념이 나오기도 했다. 우리는 끝내 이겨냈고 일본에 의존했던 수입처는 다른 국가로의 다각화로 응급 처치를 끝내고 이제는 국산화 점유율을 높여나가는 ‘투 트랙’을 경주마처럼 질주 중이다.

최근 ‘제2의 반도체’라는 배터리 산업에 ‘K-배터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정부와 기업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건 그때의 교훈으로 보인다. 당장 배터리 소재·부품·장비(소부장)로 꼽히는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에서 중국의 점유율이 60%에 달한다는 통계가 하필이면 일본 야노경제연구소에서 속속 나오고 있다. 파악한 바로는 우리 쪽에선 아직 이렇다 할 정확한 통계가 없다.

다행인 건 앞서의 경험 때문인지 우리 기업들의 국산화 움직임이 바삐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포스코, LG화학, SK이노베이션을 비롯해 엘앤에프, 에코프로비엠, 엔켐, 솔브레인 등이 소재 내재화에 집중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배터리 소부장 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 초석을 만들겠다는 전략 아래 지난 25일 ‘제7차 소재·부품·장비 경쟁력강화위원회’를 열고 맞춤형 지원방안과 연구·개발을 논의했다.

언뜻 보면 기업에 국경이 사라지고 ‘글로벌 기업 시민’이라는 구호가 정의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우리와 밀접한 미·중·일 등은 물밑에서 자국 이익을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노골적인 보호무역이 구시대 유물처럼 치부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원천’을 향한 각 국가의 산업 경쟁은 즉시 정치·외교·안보와 직결된다는 게 산업계 인사들의 설명이다. K-배터리라는 신조어에는 그런 뜻이 녹아있는가. 자문하고 검토하고 실행해야 할 때다.

뉴스웨이 임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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