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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과’의 의미를 생각하는 5.18 아침

오피니언 데스크 칼럼

‘사과’의 의미를 생각하는 5.18 아침

등록 2020.05.18 07:41

수정 2020.05.18 14:37

안민

  기자

또 5월 그날이 다시 왔다. 어느새 40번째다. ‘5월 그날’은 지난 40년 동안 꾸준히 의미를 찾아왔다. 그 과거의 사건은 현재를 의미 있게 해주는 또 다른 현재가 되어 왔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사과와 용서, 화해가 있어서다.

그러나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5월의 광주는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다. 그날을 부인하거나 무시하거나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광주 재판에 출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이 그랬다. “헬기 사격은 없었다”는 반성 없는 발언은 광주를 아프게 했다. 법정에서 법을 무시하듯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며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를 지키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인지를 국민들은 묻고 있다.

전 전 대통령과 달리 숙환에 시달리고 있는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아들인 노재헌 변호사를 통해 사과의 뜻을 내비쳤다. 재헌씨는 지난해 8월 처음으로 5.18 광주 묘역을 찾았고, 연말에는 ‘오월 어머니 집’을 찾아 진실 규명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재헌씨의 이같은 행보는 분명 평가받을 만했고 실제 여론도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광주를 찾은 지 반년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실질적 노력이 없자 ‘말뿐인 사과’ ‘다른 의도가 있는 사과’가 아니었냐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아버지를 국민묘지에 안장시키기 위해 광주를 찾은 것 아니냐’는 말도 들리고 있다.

국가보훈처가 지난해 1월 전두환, 노태우 두 전 직 대통령에 대해 국립묘지 안장이 불가하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는데 국민정서법에 호소해 이를 뒤집어보고자 하는 의도가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녀이자 재헌씨 누나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도 지난해부터 전남과 광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SK 최태원 회장에게 1조원 대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한 직후 전남대 병원을 직접 방문해 소아암 환우를 위한 공연을 관람했다. 당시 노 관장은 “아이들을 돕고 싶어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고 원론적인 언급을 했지만 왠지 재헌씨의 행보와 오버랩 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진실규명은 말이 아닌 역사적 행위로 하는 것이다. 재헌씨가 진실규명에 나설 마음이 있다면 부친이 갖고 있는 각종 기록물을 역사 앞에 공개하는 게 수순이다. 사과를 하겠다고 머리를 숙인 만큼 5.18 당시 부친의 행적을 있는 그대로 공개해 용서를 구할 것은 구하고, 오해를 풀 건 푸는 게 진실규명의 첫 단추다.

또 다시 찾아온 5월 그날.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광주를 찾고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광주를 향해 사과와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이 많다. 사과의 핵심은 진정성이다. 말로 미래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행위를 통해 과거를 밝히고, 바로 잡을 때 비로소 사과가 이뤄지는 것이다.

5.18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힌 야당에게 관련 법 제정에 신속히 나설 것을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독일이 폴란드에 전쟁 범죄를 사과하면서 말로만 용서를 구한 것이 아니라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공간을 세우기로 한 것도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한 결정이었다.

영국 시인 알렉산더 포프는 “실수는 인간의 몫이고, 용서는 신의 몫”이라고 말했다.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도, 남을 용서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물며 진정성 없는 사과는 어떻겠는가. 진정성 없는 사과는 피해자를 더 아프게 하는 비수(匕首)다.

편집인 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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