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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 ‘회계 쇼크’에 숨겨진 진실

[이세정의 항공 쑥덕]아시아나항공 ‘회계 쇼크’에 숨겨진 진실

등록 2020.04.01 07:47

이세정

  기자

항공업계가 어느 때보다 시끄럽다. 업황부진과 구조조정, 인수합병(M&A), 경영권 다툼 등 온갖 이슈가 연쇄적으로 터지면서 이를 둘러싼 풍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잡담’(雜談)으로 보기엔 무겁고 ‘정설’(定說)로 여기기엔 가벼운, 물밑에서 벌어지는 ‘쑥덕공론’을 시작해 본다.

그래픽=박혜수 기자그래픽=박혜수 기자

보름 뒤면 아시아나항공이 M&A 시장 매물로 나온 지 1년이다. 아시아나항공 최대주주인 금호산업은 지난해 4월15일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결정했고, 같은해 11월12일 정몽규 회장이 이끄는 HDC현대산업개발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1988년 세워진 아시아나항공은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유독 애착을 갖고 키워온 회사다. 하지만 지난해 2018년도 재무제표 감사 과정 중 감사의견 ‘한정’ 의견을 받으면서 주권매매거래가 정지됐다.

외부감사를 맡은 삼일회계법인은 리스 항공기의 정비 비용을 매년 나눠 부채로 잡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은 정비채무가 발생할 때 한 번에 처리하면 된다는 입장을 보였고, 양 측의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삼일회계법인은 결국 아시아나항공으로부터 재무제표를 확인하기 위한 근거 자료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감사범위 제한에 따른 한정’ 의견을 내렸다. 대기업 집단에서 감사의견 한정을 받은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감사 의견은 적정, 한정, 비적정, 의견 거절 등 4가지다. 적정을 제외한 나머지는 회계법인이 제대로 감사를 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아시아나항공은 부랴부랴 재감사를 받았고, ‘회계쇼크’ 나흘 만에 감사의견 ‘적정’으로 정정됐다. 하지만 이 사태로 박삼구 전 회장은 그룹 회장을 포함한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고, 아시아나항공은 매각을 해야 했다.

그동안 ‘입조심’을 하던 항공업계와 회계업계에서는 아시아나항공 새 주인이 결정된 지금에서야 꼭꼭 숨겨오던 진실을 밝히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박 전 회장의 유별난 애정과 회계법인들의 눈치보기가 맞물린 결과라는 것.

박 전 회장의 ‘아시아나항공 사랑’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2004년 그룹명을 금호그룹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변경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한항공에 이은 제2국적사 지위를 차지한 아시아나항공은 한때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재계 서열 7위에까지 올려놓은 박 전 회장의 자부심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을’의 처지에 있는 회계법인들이 ‘갑’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 2017년 대우조선해양 회계사기 사건이나 2018년 삼성바이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은 회계법인이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는 배경에서 터졌다. ‘좋은게 좋은 거다’라는 식의 근거 없는 낙관론도 한 몫 했다.

통상 아시아나항공처럼 대기업을 고객으로 잡으면 상당한 매출로 연결된다. 회사 규모가 큰 만큼, 한 번에 움직이는 회계사들도 100여명 안팎이다. 박 전 회장 ‘최애’인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적 부실을 꼬집으면, 고객사의 눈 밖에 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을 것이란 게 시장의 의견이다.

아시아나항공과 척을 지는 것 만이 문제가 아니다. 감사 과정에서 부정적 의견을 제시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다른 대기업과의 계약에도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회계 부문의 중요도를 낮게 보는 경향이 있다. 미국과 비교할 때 평균 감사보수는 10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일부 기업의 경우 자체적으로 꼼꼼한 감사를 하기보단, 회계법인에만 의존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정부는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회계 감사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신(新)외부감사법을 도입했다. 신외감법에 따라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도도 새롭게 시행됐다. 회계기준을 위반하거나 오류가 발생하는 데 따른 과징금이나 형사처벌 수위가 대폭 강화됐다.

삼일회계법인은 아시아나항공의 2017년도 재무제표의 감사도 맡았지만, 지난해에는 담당 회계사가 변경되면서 기존 회계처리 방식에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불거진 일부 회계 논란으로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것이 예상됐지만, 아시아나항공은 이에 대비하지 못했다.

시장에서는 회계법인계의 ‘삼성’격인 삼일회계법인이 총대를 멘 것이라고 본다. 아시아나항공은 삼일회계법인과 삼정회계법인 등을 번갈아 가며 외부감사로 뒀다. 이 기간 아시아나항공의 부실한 재무구조는 꾸준히 누적됐다. 삼일회계법인이 ‘더 이상의 눈치보기와 부실을 간과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결단을 내렸다는 분석이다.

삼일회계법인은 최근 2019년도 개별 재무제표 감사에서 내부회계 관리제도 검토의견에 대해 ‘비적정’ 의견을 내놨다.

박 전 회장은 회계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숫자경영’을 강조하며 부장급 이상 임직원을 대상으로 1주일씩 합숙 회계 교육을 시키는가 하면, 신임자(승급) 교육 과정에 회계 과목을 넣었다. 박 전 회장 측근집단에 유독 재무분야 전문가가 다수 포진한 점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하지만 박 전 회장에게 재무상황과 관련해 ‘직언’을 날린 임원들은 손에 꼽힌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박 전 회장이 재무와 회계 분야에 많은 노력을 쏟아왔다”면서 “하지만 정작 임원들과 회계법인은 이 같은 문제점을 숨겨왔고, 결국 매각까지 이르게 된 상황이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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