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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로부터 온 편지]김현숙 - 배움은 배신하지 않더라

편집자주
‘창업자로부터 온 편지’는 한국 경제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대기업 창업자들부터 미래를 짊어진 스타트업 CEO까지를 고루 조망합니다. 이들의 삶과 철학이 현직 기업인은 물론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섯 명의 자녀를 둔 49세 주부가 한 기업의 전문 경영인으로 변신할 수 있을까요? 이 놀라운 이야기를 현실로 이룬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경신의 김현숙 회장. 여성의 기업 활동이 쉽지 않았던 시대에 김 회장은 어떻게 국가대표급 여성 CEO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요?

1974년 국내 자동차 배선산업의 효시인 경신공업을 설립한 이는 김 회장의 남편인 故 이기홍 창업주였습니다. 남편이 이끌던 초기, 경신공업은 최초의 국산차인 ‘포니’의 부품 생산을 맡아 승승장구할 수 있었는데요

그러다 1985년 이 창업주가 건강 악화로 세상을 떠나며 큰 위기가 닥칩니다. 사업을 이끌 후계자도 없었던 때, 이 창업주의 친구였던 정세영 현대차 명예회장은 김 회장에게 세상을 떠난 남편 대신 경영에 나설 것을 권유합니다.

하지만 자동차와 경영에 관한 지식이 전무했던 김 회장은 도전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는데요. 고인이 된 남편과 자녀들, 수많은 회사 식구를 생각하니 그대로 사업을 놓을 수 없어 어렵게 인천 사무실로 출근을 결심합니다.

“죽을힘을 다해 노력한다면 적어도 후회는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지상태에서 시작된 경영수업은 하루하루가 고됐습니다. 김 회장은 업무를 파악하기 위해 새벽 5시 무렵 일과를 시작했고, 작업복을 입은 채 공장에 출근해 앉을 시간조차 없이 현장을 돌며 일을 배웠습니다.

대학의 최고경영자 과정도 등록했습니다. 회사가 끝나면 곧장 학교 강의를 들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날 배운 중요 내용을 메모하고 기사 스크랩까지 마친 늦은 새벽에야 잠드는 생활을 10년 이상 지속합니다. 물론 엄마의 역할도 소홀할 수는 없었지요.

“출발이 한참 늦은 내가 남들을 따라잡으려면 1분 1초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몸이 두 개 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내며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적 궤도를 되찾은 무렵, 위기는 다시 찾아옵니다. 현대자동차가 1989년 배선사업을 다원화하면서 그간 독점했던 시장에 경쟁자가 생긴 것이지요.

이후 공장의 생산 물량이 대폭 줄고 다른 업체에 인력을 뺏기기도 하는 등 타격이 작지 않았습니다. 김 회장은 숙고 끝에 국내 시장에 안주하기보다 해외로 눈을 돌려 고비를 극복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당시 자동차 부품을 수출하는 일은 흔치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현대차가 해외 생산 기지를 세계에 세울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한발 앞서 과감하게 도전한 것인데요. 2000년 이후 결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세계 시장에 진출하며 김 회장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더 나은 기술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에 자체 연구소를 통해 독자적인 기술 개발에 힘쓰면서도 해외 선진 기술 도입을 위한 노력도 이어갔지요.

이후 한층 발전된 기술력을 통해 와이어링 하네스에서 커넥터, 친환경 제품 등으로 사업영역도 확대해 왔는데요. 김 회장의 아낌없는 투자와 도전을 바탕으로 경신은 멕시코, 캄보디아, 중국 등에 공장을 둔 국제적 기업으로 도약하게 됩니다.

“생각만 하고 두려움에 물러섰다면 지금은 없을 것…도전하지 않으면 100% 실패한다.”

1974년 창립 이래 179개에 달하는 자동차 부품 국산화에 성공한 경신, 그렇게 국내 자동차 산업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김 회장은 여전히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한 기업의 CEO이자 학생, 그리고 엄마로 누구보다 치열한 30여년을 지내온 경신의 김현숙 회장. 위기의 순간에 주저앉아 고민만 했다면 CEO로의 변신, 팔방미인 같은 활약상은 없었겠지요? 그의 성공을 눈여겨봐야 할 이유입니다.

“준비가 되지 않았던 나에게 유일한 해법은 공부하는 것이었고 배움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박정아 기자 p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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