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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병철

[창업주에게 배우는 인사이트 리더십]삼성 이병철

등록 2018.01.16 07:07

강길홍

  기자

미래 내다본 혜안···포기하지 않는 인내1938년 ‘삼성상회’ 설립하며 사업 시작제일제당·제일모직 세우며 제조업 진출금융·중화학 등 전방위적인 덩치 키우기1983년 반도체사업 진출이 마지막 유산

삼성 이병철 기사의 사진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가로 꼽힌다. 삼성이라는 초일류기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특히 반도체 사업 진출은 호암이 마지막으로 남긴 유산이다. 반도체를 바탕으로 삼성은 세계 최고 기업으로 올라섰다.

호암이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기까지는 삼성을 세운 뒤 수십년이 지나서다. 또한 반도체 사업이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수십년이 걸렸다. 때문에 호암의 리더십은 인내와 혜안으로 요약할 수 있다.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는 인내가 호암을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가로 만들었다.

1910년 경상남도 의령군에서 태어난 호암은 1936년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마산에서 정미소와 자동차회사를 운영하면서 성공을 맛봤지만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면서 은행융자를 갚느라고 사업을 모두 정리하게 됐다. 이듬해인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시작한다. 삼성그룹의 역사가 시작된 셈이다.

1948년에는 삼성물산공사를 세워 무역업에 뛰어들었고 한국전쟁 이후인 1953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세운 회사가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이다.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호암은 삼성의 덩치를 계속해서 키워나간다.

동방생명, 신세계백화점, 안국화재보험, 전주제지 등을 비롯해 성균관대학교, 중앙개발, 고려병원 등도 인수했다. 1964년에는 한국비료 인수와 함께 동양라디오, 동양방송을 설립해 방송에도 진출한다. 이듬해에는 중앙일보를 설립했다.

호암은 1966년 ‘사카린 밀수사건’이 터지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호암은 후일에도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당시에는 불가피하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18개월만인 1968년 경영에 복귀했다. 이후 1969년 삼성전자와 삼성전기를 설립해 삼성그룹이 또한번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1974년에는 삼성석유호학, 삼성중공업 등 중화학 공업에도 진출해 수출 전선의 최일선에 서게 됐다.

호암은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반도체 사업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1982년 삼성반도체통신으로 사명을 바꾸고 이듬해 2월 D램 사업에 진출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의 운명을 뒤바꾼 사건이다.

전자 사업을 경영하면서 반도체의 중요성은 이미 알고 있었다. 특히 미래에는 반도체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확신을 바탕으로 D램 사업에 진출 선언한 것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호암도 실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호암은 “사람들은 내가 한 번도 사업에 실패한 적이 없는 줄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며 “다만 젊었을 때 치른 실패의 체험을 나는 값진 교훈으로 돌리고 있다. 물이 늘고 파도가 거칠어지면 위험하기도 하지만 그 대신 배는 그만큼 높이 올라앉는다”는 말을 남겼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인내가 오늘날의 삼성을 만든 시발점이 됐다.

호암의 기업가정신은 후대로도 이어졌다. 삼성은 물론 신세계·CJ·한솔그룹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호암이 세운 삼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들 기업은 범삼성가로 불리며 호암의 후손들이 이끌고 잇다.

뉴스웨이 강길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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